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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울산 중구 다문화상담사
오정희 편한자리심리상담소장

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두 사람의 관계 속에 긍정성이 다 말라버린 상태라는 느낌이 든다. 존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서로에 대한 신뢰와 헌신, 그리고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위한 필수요소라고 했다. 

10년 전 서울에서 국제공인 가트맨 부부상담사 훈련을 받으면서 자신의 장점과 배우자에 대한 장점 50가지를 기록해 오라는 과제가 주어졌었다. 나의 장점을 적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남편의 장점을 찾기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 가야 할 날은 다가오는데 장점을 서너 가지 적어놓고는 막막한 마음에 책상 앞에 서성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장점은 고사하고 그동안 느껴왔던 단점이나 원망했었던 마음들이 꾸역꾸역 올라와서 과제를 훼방 놓았다.

금요일 밤이었다. 드디어 내일 새벽 첫차를 타고 가야 할 상황이니 더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다급해진 내 마음에 단점으로 보였던 것을 뒤집어 보는 순간 단점이 아니라 모든 게 장점으로 변화하는 황당(?)한 기적 같은 변화가 찾아왔다. 나의 감정이 이상하리만치 편안하고 담담하게 장점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매사가 철저하다. 정리정돈을 잘한다. 시간약속을 잘 지킨다. 계획적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이 우리 부부사이에 갈등의 요소가 될 때가 많아 한 번도 장점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니 솔직히 그러한 태도가 가끔 나를 힘들게 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무덤덤해진 마음으로 50가지를 적고 보니 장점 과제가 완성됐고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탓이구나, 내 탓이구나, 내 탓이로소이다"라는 말을 신음처럼 내뱉고 있었다.

상담실을 찾은 부부들에게 "서로의 장점을 세 가지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하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각본에 짜여진 듯 "저 사람 장점이 있으면 내가 여기 왜! 왔겠어요?"라고 되묻는다.

그 배우자 역시 같은 대답이다. 콧방귀를 뀐다. "그거야 나도 마찬가짐니더. 저 사람한테 장점은 고사하고 꼴 보기 싫은 게 더 많지요!"라며 대놓고 화를 낸다. 이쯤 되면 그분들의 마음 밭에는 부정적 기억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아니 그래도 아내분의 장점 한 가지만이라도…"라고 하면 냉정한 표정으로 "없심더"하고 뚝 잘라버린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장점사례를 제시한다. "그동안 남편분께서는 회사생활을 하셨다는데 식사는 누가 마련해서 드셨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그거야 뭐 저 사람이 했지요. 그게 뭐 장점이 됩니까?"하고 반문한다. 

그렇다. 깨져 버린 관계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일들에 대해 감사하고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새롭게 키워내야 한다. 평소 배우자에 대해 감사하는 표현을 하는 것이 낯간지럽고 입발린 소리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아닐까? 특히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그간 살아온 거 보고 알아야지 뭐 이 나이에 그런 말을 꼭 말로 해야 아느냐?"며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고맙다는 표현은 부부가 나눠야 할 말이 아니라 먼 나라 이야기다. 다만 밥이 좀 늦거나 퇴근시간이 늦어지면 타박하고 비난, 지적하는 대화(대놓고 화내는)는 자연스럽다. 결국 부부 사이에 좋은 기억을 쌓기는 고사하고 관계를 불태우기 쉽다. 

상담이 진행되고 과제로 주어진 배우자에 대한 장점 몇 가지를 나눠 보라고 권하면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내가 생각하는 당신의 장점은…"하면서 한가지씩 나누기 시작한다. 두 분의 얼굴이 점점 밝아진다. 웃음이 얼굴에 담긴다. 어색한 표정으로 "이거 뭐 외국말보다 훨씬 어렵네요!"라고 겸연쩍어한다. 나를 믿고 관계 회복에 첫걸음을 내딛어 준 모습에 대해 쉽지 않았을 텐데 마음을 나눠 주니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절반의 관계 회복이 시작되고 있는 순간이다.

서로에 대한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변화의 첫걸음은 상대의 장점을 떠올리고 표현하는 작업이다. 태산을 옮겨놓거나 주식으로 대박을 내는 것이 장점이 아니다. 일상에서 보여지는 그 사람의 소소한 모습에서 장점을 찾아낼 수 있는 마음의 불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

부부상담을 마치고 내 모습을 되돌아보며 지금 나는 남편의 장점을 얼마나 많이 꿰고 있을까? 10년 전 남편 장점 50가지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떠 올라 혼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킨 김에 그때 보다는 내가 많이 변했을 텐데 하는 기대감에 핸드폰을 열고 남편의 장점을 적기 시작한다. 

'나의 짝 장점은…자기관리가 철저하다/초지일관 정신이다/술을 절제할 줄 안다/규칙적이다/주변 정리 정돈을 잘한다/검소하다/소소함을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안다/주방 칼을 잘 갈아준다/나이보다 젊게 산다/가끔 유머도 날려준다/내가 쓴 글을 비판하거나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나의 일에 묵묵히 도움을 준다/나보다 마음밭이 넓고 깊다/냉철한 분별심이 있다…(중략)' 

단숨에 100가지를 넘겼다. 손가락이 지릿지릿 해 진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안다. 우리가 이 생각들을 잡으면 행복, 잃어버리면 불행, 놓으면 무미건조한 삶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상대의 장점을 떠올려 함께 나누는 순간 거짓말처럼 행복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그러나 상대의 단점을 생각하는 찰나에 이미 미움이 가슴에 똬리를 틀고 불행의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일생을 함께 할 짝지에 대해 조금만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긍정적인 부분들을 살펴보고 의도적으로 계획을 하고서라도 서로에 대한 장점들을 나눌 때 그 마음에 삼불(불평, 불만, 불행)이 사라질 것이다. 오늘 하루 가까이하는 상대의 장점 세 가지만 나눠 보시라. 분명 어제보다 행복한 오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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