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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길 시인·평론가
안성길 시인·평론가

반세기 전 까까머리 중학 시절 국어를 가르치시던 스승께서 어느 날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무엇인줄 아느냐?" 물으셨다. 까까머리들은 "귀신, 아버지, 공동묘지" 등 저마다 떠오르는 대로 나열하자 가만 귀 기울이고 계시던 국어 선생님은 '공짜'라는 말이라고 하셨다. 바쁘고 정신없는 성장기엔 진학과 취업 등으로 선생님의 그 말씀을 잊고 살다가, 생의 여러 아리랑 굽이 때마다 '공짜'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함을 체득하고 스승의 저 말씀을 실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둘째의 빈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다가 예전에 필자가 사용하던 책상 옆면에 낯익은 푸른 글씨 한 줄을 보고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노 페인 노 게인, no pain, no gain. 뭔가를 얻으려면 고생을 갈아 넣어야 한다." 저 한 줄은 아마 오래전 저 책상을 쓸 무렵 필자 나름의 '삶의 방향타'로 가슴에 새겼던 듯하다. 한데 기억에 없다. 순간 뒷덜미가 서늘했다. '아,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막살았구나!' 하는 자책이 훅! 떠밀려왔기 때문이다. 


 최근 북구 모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내와 출근길에 지난밤에 뜻밖에 만난 그 푸른 글씨에 대해 얘기하자 얼마 전 모 연수에서 자신이 귀담아 들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나라 왕이 자신이 진실로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조정의 모든 신하들에게 명하여 구한 한 마디를 얻는 과정을 들려주었다. 처음 그 왕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합심해 동서고금의 지혜를 모아 십여 권의 책으로 엮어 올리지만 반려된다. 이에 신하들은 더욱 성심과 지혜를 다 모아 한 권으로 압축해 왕에게 올리지만, 그 왕은 우매하고 생업에 여념이 없는 백성들을 위해 오직 한 줄로 다시 줄일 것을 명한다. 그 결과 얻은 말에 마침내 왕이 무릎을 탁! 치며 기뻐했다는 구절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라고 했다. 


 다 듣고 보니 둘째 방 책상 옆에 적힌 저 푸른 글씨와도 상통되기에 마음이 묘했다. 또한 새삼스럽게 그동안의 하루하루들을 곰곰 되짚으니 내 뒷모습이 여간 갈 짓자가 아니었음에 많이 부끄럽기도 했다.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당할 재간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흔히 우스갯소리로 "암만 그래도 운 좋은 사람은 못 당한다"며 실실거리는 치들이 가끔 있다. 비록 현실에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면 몹시 화가 나곤 한다. 이를 그냥 지나치면 지닌 능력이 부족하지만 공평과 정의를 믿고 열심히 노력하며 힘겨운 삶을 바르게 잘 살아내고 있는 저 수 많은 내 이웃들을, 그 애 터지는 노력의 고귀한 가치를 무참히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무슨 수단이나 방법을 사용하던지 개의치 않고 의도한 바의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결과 만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 결과 만능주의는 부도덕, 반정의, 비겁과 비열, 폭력과 부자유, 강권과 억압, 무차별 수탈, 강제된 희생 이 모든 비정상과 반생명적인 상황과 행위들이 결과만 좋으면 모조리 합리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상황의 극치다.


 한편, 근대의 많은 시간 동안 중국의 수많은 시민들은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다. 공산주의 체제가 된 뒤에도 미약한 경제는 살아날 줄 몰랐고 바닥만 기어 한숨만 쉬게 했다. 그러던 중 중국의 이런 어려운 경제를 예의 주시하던 공산당 지도자 덩샤요핑(鄧小平)이 공산 체제 하에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는 획기적인 개방정책으로 급속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개방정책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부 세력을 향해 덩샤요핑은 '흑묘백묘(黑猫白猫)론',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즉 당장 인민을 배부르게 먹일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상관없지 않느냐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엔 이 '흑묘백묘론'이 너무나 그럴듯해서 반발세력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소수의 지식인들은 그 부정적인 측면 즉 '목적이 선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가'에 대해 중국 밖에서는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었다.


 결국 앞서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의식이나 덩샤요핑의 "흑묘백묘론"이 아무리 그럴듯한 선한 결과를 보여도, 이를 당장의 달콤한 결과를 의식해 방치하면 정말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참된 진리라 할 '과정'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인간은 완전체인 신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인간의 세상에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도, 정의도, 행복도, 민주주의도 세상 모든 것은 완전하지 않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완전한 그쪽으로 끊임없이 수렴되어갈 뿐이다. 완전한 자유를 향해, 완전한 정의를 향해, 완전한 행복을 향해, 완전한 민주주의를 향해 끊임없이 수렴되어갈 뿐인 것이다. 


 세상 가장 소중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의 완전한 마무리도 숨을 마지막까지 거두기 전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아무리 그럴 듯한 제도나 복지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소용없다. 실제로 시민들의 삶 속에 실행될 때 가치를 발휘한다. 실천해야 한다. 그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부뚜막에 소금도 그냥 집어넣어선 안 된다. 그 정량에 맞게 시간과 순서에 맞게 넣어야 제 맛을 내는 것이다. 이제 아무렇게나 하던 시대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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