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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우 약사초 주무관
박재우 약사초 주무관

솔직한 자기 고백을 하자면, 나는 대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입대 전 1∼2학년 시절에는 더더욱 그랬다.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갖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남자애들과는 술마시고 당구치고 PC방 가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로 인해 학점은 2점대를 자신만만하게 유지했고, 전역 후 3점대를 회복하기 위해 쓰라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하며 고학년 때는 성적이 꽤 잘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수업을 듣는 4년 내내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과를 바꿀 수도 없었다. 전과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지, 도무지 그놈의 꿈이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걸 찾고자 했다. 전공 수업에만 매달리지 않고 눈을 돌렸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 신문방송학과 수업을 들었더니 전공보다 백배는 재밌었다. (물론 성적이 잘 나온 건 아니다) 영화나 음악 같은 예술 분야 수업도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수업 시간 외에는 동아리 활동을 했고, 갖가지 공모전 및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글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 언론사 동아리에 들어갔으며, K-POP을 알리기 위해 카자흐스탄 봉사를 다녀왔고, 세계 선도 기업을 탐방하기 위해 미국에 다녀왔다. 


 해외 경험이 쌓이다 보니 해외에서 살고 싶은 욕심이 생겨 1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점차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났다. 잘하게 되다 보니 직업으로 하고 싶은 바람이 생겼고, 평생 그 분야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싶은 꿈도 생겼다.


 지난 2월, 교육부는 2025년부터 전체 학교에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고교학점제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일정 학점을 채우면 졸업할 수 있는, 대학교의 시스템과 유사한 제도다. 학생들은 자신이 재밌어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의 수업을 골라 들을 수 있고, 미래 진로 설계의 과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능동적인 수업 참여와 높은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의 도입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대학에서처럼 다양한 학문을 더 일찍 배우고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지만, 현재 일부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들을 수가 없어 엉뚱한 분야의 수업을 듣고 있다.


 예를 들어, 드론을 배우고 싶은데 1년 내내 비누 만들기만 하는 격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인데, 이런 모습은 인기 있는 강의는 언제나 수강신청일이 되면 불티나게 닫히기 마련인 대학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초과 수요에 대해 학교 그리고 교육부 측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수업 '쏠림'현상은, 또래가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청소년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거친 해결책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중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지역 격차다. 
 대학만 봐도 지방의 경우 매년 신입생 수가 줄고 있는데, 그만큼의 인원이 서울로 진학하고 있다. 영남 지역을 대표하는 부산 및 경북대학교의 경우 합격생 10명 중 8명이 입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진학한다고 한다. 
 고교학점제의 특성상 지역의 우수 기관과 산학 협력이 중요하고, 인프라가 받쳐줘야 기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어서 지역 격차는 해결해야만 하는 큰 과제다. 


 현재 교육부에서는 비대면 강의로 교육의 폭을 확대해 지역 격차를 줄이겠다는 견해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알지 않는가? 우수한 과학 연구원에 가서 드론을 만져보고, 조작하고, 체험하는 것과 드론을 비대면 강의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가 안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수업의 양과 질 모두를 충족해야 하는 것은 큰 난제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교육 문화에서 다양한 방식의 교육 문화로 변화하려는 모습은 반갑기 그지없다. 꿈을 찾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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