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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奇形의 손
 
제인자
 
영취산 오르다 늙은 상수리나무를 만났네
둥치로부터 편편히 내민 나무의 손
너럭바위 떠받친 손을 보네
 
가랑잎 내려놓고 가을을 닫은
실한 열매를 추억하는 삼동三冬의 손등
거칠거칠한 세월의 문장을 만져보네
 
말없이 말하는 손의 내력
작달막한 어머니 관절마다 불거진
갈고리손, 갈수록 펴지지 않는 
육신에 비해 너무 커다란 손이었네
 
상수리나무 살 속으로 숨쉬는 줄 모르고
산비알 버젓이 걸터앉은
나는 우악스런 바위였네
 
너럭바위 거머쥔 기형의 손
못박인 그 손바닥 도무지 펼 수 없었네
 
△ 제인자 시인: 경남 마산 진동 출생. 2005년 문예운동 등단 2005년 울산문학 신인문학상. 제5회 국민일보 신춘신앙시 대상 2019년 기독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달의 눈썹'(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기온이 내려갔다. 뭔가 온기가 그리워지는 새벽, 온기라는 말과 대응하는 것으로는 손이 으뜸이다. 어머니의 갈고리 손이 어느새 다가와 내 등을 쓸고 있다. 느리고 둔탁해진 손이 하는 말을 듣는 시간이다. 펴지지 않았던 어머니의 왼손을 이 시에서 만난다. 도무지 펼 수 없었던 그 손과 육신에 비해 너무 큰 손, 먼 길 떠난 두 손을 여기서 만나니 먹먹하다. 

 손의 언어는 힘이 세다. 그 말맛에 길들이고 나면 입으로 내뱉는 말이 너무 구차하고 사소해질 때가 많다. 손의 언어는 상황이 위태로울 때일수록 더욱 깊어진다. 램블란트 그림 속에서 돌아온 아들의 등을 감싸는 아버지의 두 손처럼. 그림 앞에서 두 손의 목소리에 하염없어지는 표정으로 서 있던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는 손에서 위로받을 때가 많다. 손이 하는 말은 오래 온도로 남아서 혈관 따라 도는 것 같다. 그 순환의 세월이 바로 시인이 말하는 '말없이 말하는 손의 내력'이 될 것이다. 손의 거친 문장을 펼치면 울퉁불퉁 길이 나오고 상처투성이 길에서 한참을 울다가 간 시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앞으로도 종종 와서 울다 갈 장면도 보인다.

 지난주에 시어머니가 다녀가셨다. 금가락지를 하나 맞추고 싶다는 말에 소개받은 금은방으로 갔다. 평생을 세공사로 일했다는, 열 손톱이 다 뒤틀린 손이 팔십 중반을 넘어선 어머니의 갈고리 손을 잡고 손가락의 크기를 쟀다. 나는 이 광경을 숨을 죽이고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 손의 표정, 저 손의 말이 아슬아슬 지켜낸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등을 잠시 생각했지만 순간을 담아내기엔 내 사유가 너무 얕아서 그냥 뭉클 바라만 보았다.

 얼마 전 울산에서 나고 자란 시인이 자신의 유년에 대해 쓴 글을 읽었다. 나의 것과 많이 다른 풍경인데도 짠한 울림이 와서 한참 뭉클했다. '유년'이라는 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쏟아지는 말들. 퍼내도 퍼내도 끝없이 생겨나는 거대한 말의 사전, 말의 우물이다. 그 속에 '어머니'가 있고 또 손이 있다. 시인은 이 시를 쓰면서 얼마나 먹먹했을까. '나는 우악스런 바위였네'라는 문장이 가 닿는 곳에서 얼마나 아렸을까 생각한다. 
 '상수리나무 살 속으로 숨쉬는 줄 모르고, 산비알 버젓이 걸터앉'아 있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영취산까지는 몰라도 가까운 뒷산에라도 가서 늙은 상수리나무를 보고 와야겠다. 그가 내민 손을 조용히 잡아보고 와야겠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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