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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희 문화쉼터몽돌 관장
고은희 문화쉼터몽돌 관장

지난해 말 전국 최초로 문인극회인 '쫄병전선'이 창단한 이후 1년 만에 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 19일, 20일 이틀간, 중구 성남동 토마토극장에서 공연한 작품은 문인극회 단장인 정은영 수필가의 '다방열전'을 모티프로 한 '청자다방 미스김'이다. 공연을 위해 시조시인, 수필가, 시인 등 문인들이 잠시 펜을 내려놓고 무대에 올랐다. 문인들이 일탈한 결과는 예상보다 잘했다는 반응이었다.

작품의 배경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청춘들이 돈을 벌기 위해 공단도시 울산으로 몰려들던 때다. 청자다방, 월성다방, 맥심다방, 소공동 다방 등 시계탑 사거리 일대 음악다방들은 청춘들의 객기를 풀어주고 달래줬다. 연극은 어느 날 갑자기 잊힌 기억들이 불쑥 되살아나듯이 7080 청춘들의 추억을 들추는데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원도심에서 성황을 누린 음악다방은 청춘들을 위한 장소도 되었지만, 문화예술인에게 소중한 공간이었다. 시와 수필 등 문학작품을 발표하고, 미술작품을 선보이는 공연장과 갤러리 역할을 했다. 음악이 흐르고 만남의 장소에서 발표한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극 주인공은 미스김으로 전 울산문인협회 사무국장인 김해자 수필가가 맡았다. 김 작가는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가발과 미니스커트, 높은 구두, 색깔 있는 스타킹 등을 직접 구입했다. 대사도 쉽지 않았는데, 배역에 몰입해 나날이 연기력이 상승했다. 또 다른 주인공은 DJ역의 김동관 시조시인이다. 가장 많은 장면에 출연하는 데다 대사까지 가장 길었다. 다른 배역보다 두 서너 배에 달하는 대사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그때 그 시절의 DJ역에 어울리는 바바리코트, 긴머리 가발, 고뇌하는 남자의 걸음걸이, 여성에게 친절한 말투 등을 연구해 선보였다.

일찌감치 연기력을 인정받은 또 다른 레지역의 황지형 시인은 샤우팅 대사를 잘 처리했다. 연습을 하고 나면 시름시름 몸살을 앓기도 했다는데, 연습장에만 오면 펄펄 날았다. 톡톡 튀는 젊은 여성으로 분한 유정숙 수필가의 연기도 돋보였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여자손님 역을 맡은 이다온 수필가의 반전 연기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마담역을 맡은 이영필 시인은 통솔력 있고 우아한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백발의 육십대 수필가가 젊은 배역을 맡아 젊게 꾸미고 나와 능청스러운 연기까지 소화하는 것을 보면서 단원들은 뭉클한 기운을 느꼈다. 이외 단원 모두 역할에 충실해 호평을 얻었다. 

앞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정재화 북구 쇠부리 축제 사무국장에게 자문을 얻었다. 정 국장이 김정민 감독을 소개해 단원들은 수개월 간 김 감독으로부터 연기지도를 받았다. 캐릭터에 맞는 동작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대사의 전달력에 집중적으로 신경을 써야하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후 매주 목요일 저녁 토마토 소극장에서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연습 초기에는 오합지졸의 단원의 연기력은 형편이 없었지만,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스타일을 분석한 김 감독의 디테일한 지도로 단원들의 연기력은 급상승했다. 연극의 완성도가 높아가는 만큼 단원들의 단결력 또한 동반 상승했다. 홀로 펜대를 잡고 작품을 쓰는 것에서 벗어나 단체를 위하는 이타적인 정신이 저절로 생긴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문인들이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연기자가 연기를 해야지, 문인이 왜 연극을 한다는 거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글을 쓰고 극본을 쓰는 사람이 문인이기에 작품 속 배역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들 위안했다. 장르는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고, 장르에 따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것도 예술인의 자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청자다방 미스김은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언니요, 누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여성의 미래는 어땠을까도 상상하면서 왠지 짠한 여운이 남았다. 순수 문인들로 구성돼 어설픈 공연일지는 모르겠지만, 울림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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