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억새의 길
하늘과 바람과 억새의 길
  • 진희영
  • 2021.12.02 20:18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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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9봉 톺아보기] 8. 천황산 사자봉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소리 없이 떨어져 날리며 뒹구는 나뭇잎을 바라보면 왠지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땅뙈기 한 평 없는 가난한 화전민들이 살았던 하늘 아래 가장 높은산동초등학교 고사리 분교가 있었던 천왕산 사자봉, 사자평으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높은 하늘을 쳐다보며,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를 바라보고, 자연을 즐기며 넓은 평온을 즐겁게 걷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젊고,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천황산(사자봉)은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이 남서진하면서 능동산에서 허리를 틀어 둘로 나누어진다. 
그중 한 갈래는 배내고개로 내려와 배내봉과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바탕을 이루고, 다른 한 갈래는 남쪽으로 천황산에 이른다. 천황산에 이르는 산줄기는 도래재~정승봉~정각산~승학산으로 이어진다. 천황산은 영남알프스의 중심에 위치해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산속의 산으로 전망대 역할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약산(수미봉)과 이웃하고 있으며, 산자락에는 천연기념물인 얼음골과 금강동천(金剛洞天)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사자평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산객들.
사자평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산객들.

천황산(사자봉)으로 가는 2가지 코스
#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 이용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얼음골 케이블카는 2011년부터 설치운행 중인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긴 1.8㎞로 오후 5시가 마지막 운행 시간이며, 여름철에는 오후 6시까지 운행한다. (비용은 성인 기준 왕복 1만3,000원) 하부 승차장(해발 320m)에서 출발해 10분이면 상부 승차장(해발 1,020m)에 올라갈 수 있다. 약 700m를 올라가는 셈이다. 걸어서 올라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케이블카 상부 승차장을 지나면 남쪽으로 천황산 사자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나무로 만든 갑판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어 조망하기가 좋다. 마치 천상의 정원에 올라온 느낌이 든다. 맞은편 백운산과 가지산, 운문산, 억산, 구만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발아래는 얼음골의 수많은 사과밭과 울밀선 위로 달리는 차들도 쉽게 조망된다. 이곳을 지나 300여m의 길을 따라가면 하늘사랑 길 중간 지점의 전망대에 닿는다. 여기서는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에서 이어지는 죽바우등, 한피고개, 시살등, 오룡산 등의 봉우리가 일자로 길게 늘어져 있는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다. 조금 뒤 하늘사랑길의 도착지인 녹산대(1,100m)에 도착한다. 이곳 경치 또한 최고의 절경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맞은편 백호 바위를 중심으로 한 백운산과 그 뒤 가지산, 운문산, 억산 등 영남알프스의 준봉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으며, 얼음골의 가마불능선 협곡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다. 또한 샘물상회 방향, 남쪽으로 바라보면 사자평의 억새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천황산의 웅자(雄姿)가 눈앞에 서 있다. 이제부터 산길은 평탄하게 이어진다. 천황산 사자봉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봄철에는 아름다운 철쭉꽃들이 만발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가을철에는 억새가 만발해 온산을 뒤덮는 천황산으로 가는 길이다. 발걸음 내내 가볍다. 이렇게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여 분이면 천왕산 사자봉 정상에 도착한다. 

# 얼음골주차장~얼음골~동의굴~빚더미 계곡~샘물상회 (도보) 
얼음골주차장에서 철재다리를 건너면 얼음골 매표소로 향하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매표소를 지나 얼음골 결빙지까지는 0.4㎞를 올라가야 한다. 결빙지에서 천황산까지는 2.9㎞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결빙지를 지나면 가파른 너덜겅 길이 이어진다. 조선 시대 허준이 스승 유의태를 해부했다는 동의굴을 지나면 소위 빚더미 계곡이라 불리는 용아능선 협곡이 이어진다. 경사 45도~50도에 가까운 너덜겅과 돌계단을 2시간 정도 올라가면 얼음골 카이블카 상부 승강에서 이어지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천황산(사자봉) 까지는 30여 분 걸린다. 

 얼음골은 천황산 북쪽 중턱 해발 700m에 이르는 3만여㎡의 넓이의 계곡 내에 60도 경사진 돌밭 가운데 있다. 6월 중순부터 얼음이 맺히기 시작해 7월 말~8월 초에 가장 많은 얼음이 얼고, 9월 초순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보호 철책이 있는 곳에서, 계곡을 따라 천황사 절까지 바위틈마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신비로운 이상 기온지대를 말한다. 한여름 계곡 따라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손을 담그면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얼음이 다 녹아 바위틈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와 겨우내 이곳 계곡의 물은 얼지 않는다. 주변에는 가마불협곡이 있으며, 암·수가마불 폭포도 있다. 

빚더미 계곡을 오르는 산객.
빚더미 계곡을 오르는 산객.

 얼음골의 빚더미 계곡은 옛날 밀양 산내 사람들이 배내골이나 양산, 원동, 물금읍 방면으로 질러가는 지름길이며,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숨 가쁜 혈전이 벌어진 지옥의 문이었다. 9,900여 개의 돌계단과 너덜겅을 죽자살자 올라가야 하는 곳으로 일명 '빚더미' 계곡으로 불렸던 험한 사지(死地)였다. 또한, 땅뙈기 한 평 없는 가난한 화전민(火田民)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었던 곳이었다. 이들은 남의 논밭을 소작하면서 많은 빚을 져 생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야반도주로 이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한동안 몸을 숨긴 뒤 사자평 일원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범 아가리와 같은 곳이었다. 이들은 낮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땅속에 굴을 파서 숨어서 있다가 주로 새벽이나 밤늦게 달과 별을 보며 약초나 감자, 고사리 등을 재배하며 끼니를 이어갔다는 것이었다. 경사 45도~50도에 가까운 바윗길로 계곡 양쪽으로는 일명 용아능선이라 불리는 직벽의 바위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다.

# 천황산 사자봉에서의 조망
정상에서의 조망은 감탄의 연발이라 할 수 있다. 사자봉은 1개의 정상석과 1개의 케른(cairn·돌탑)이 있고,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완만한 봉우리에 작은 돌들이 흩어져 있다. 이름에서처럼 백수의 왕 사자 한 마리가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넘치는 남성적인 산으로 느껴진다. 동쪽으로는 배내봉에서 이어지는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의 서쪽 사면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운문산과 백운산, 구만산, 멀리 청도 화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남쪽으로는 향로산, 금오산, 천태산, 구천산, 만어산이 조망되고, 북쪽으로는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과 고헌산, 능동산, 석남터널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렇듯 천황산 사자봉은 영남알프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봄, 여름의 천황산 사자봉은 활기찬 사자의 기상을 상징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거대한 사자 한 마리가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단숨에 뛰어오를 것 같은 기상을 하고 있으며, 가을철이면 사자의 깃털처럼 억새가 바람에 일렁이고, 동면(冬眠)에 들어갈 채비를 하기 위해 하나, 둘씩 홀씨를 날려 보내는 느낌도 들게 된다.

 사자평은 천황산과 재약산 사이의 동쪽 광활한 고원지대(해발 1,000m)를 말한다. 면적이 125만 평에 달하고 온통 억새로 뒤덮여 있다. 신라시대 때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화랑도가 호연지기를 길렀던 수련장이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께서 승병을 훈련해 왜군을 물리쳤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여순 반란사건 때는 빨치산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는 털보산장이라는 추억이 깃든 주막집이 있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대피소 역할을 할 수 있었고, 여름철 비박 장소였으며, 태극 종주할 때 베이스캠프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또한, 사자평 동쪽에는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고 그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고사리 분교가 있었다. 

# 옛날 화전민 자녀들이 다녔던 사자평 고사리 분교
사자평 동쪽에는 옛날 화전민들이 20여 호 살았고 그들의 자녀들이 다녔던 고사리 분교가 있었다. (산동초등학교 사자평 분교·1966년 4월 29일 개교해 졸업생 36명을 배출하고 1996년 2월에 폐교) 그러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그때의 추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래전 고사리 분교는 사자평 고원의 명소가 됐다. '사자평'이란 말보다 재약산 '옛 고사리 분교'로 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지금 이곳 사자평에 올라온 많은 사람의 입에서 '옛날 고사리 분교가 있었던 그 자리' 이렇게 말하고 지나간다.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의 향기를 맡으며 천황산 사자평을 오르는데 귓전을 울리는 또 다른 한마디 "와~ 너무 좋다." 사자평원은 '2007 꼭 보전해야 할 한국의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천황산 사자봉과 사자평 억새평원에서 눈이 시리도록 사방팔방을 둘러본 뒤 하산길을 택한다. 가지고 온 차나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여러 방면으로 길은 열려 있다. 천황재를 거쳐 재약산(수미봉) 방면을 오른 뒤 표충사 방향을 많이 이용한다. 또 사자평을 거쳐 주암 삼거리를 지나 단풍과 물길이 10리를 이루는 주암계곡 방면으로도 사람들의 발길이 끓어지지 않는 곳이다. 오늘 하루 아무런 생각, 욕심 없이 그저 가까운 산천을 천천히 걸으며 오른다는 것에 만족해본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내가 걸어온 뒤를 돌아다 보면, 산이 몸짓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큰 바위는 우람한 몸짓으로 말하고, 시냇물은 맑은 소리로 말하고, 키 큰 나무는 바람의 소리를 먼저 알려주고, 작은 숲들은 새들의 소리를 전해주고, 아름다운 꽃들은 향기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끝없이 펼쳐진 사자평 억새평원을 발이 시리도록 걸어보며 하나, 둘씩 홀씨를 날려 보내는 억새에서 비움의 철학을 느낀다. 오늘 하루 산은 아무것도 없는 무념의 상태로 나를 끌어안았다. 나 자신이 바람의 신(神)이 된 느낌이다.  진희영 산악인

●산행경로 
얼음골 케이블카~하늘정원~샘물상회 갈림길~얼음골 주차장 갈림길~천황산 사자봉~하늘정원 원점회귀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얼음골 주차장~매표소~얼음골 결빙지~동의굴~빚더미계곡~샘물상회 갈림길~천황산(사자봉)~(편도) 약 4.5㎞로 3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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