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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송이 밟으며

김양희
 
천상의 경계 찾아가는
안개 자욱한 비자림 숲길을
화산송이 밟으며 걸으면
보시락 보시락
발을 타고 오르는 곰보 사탕 껍질 소리
제주사람들이 구충제로 먹었던
떫은맛 비자나무 열매
씹을수록 차지게 입천장에 달라붙어
비릿함에 주저주저 삼키고 나면
아버지 양복 주머니에서 내어주던 곰보 사탕
배낭 멘 젊은 아버지가
손잡고 걷는 어린 딸에게 
조금만 더 가보자,
속삭이며 막대사탕을 쥐어준다
세상에 없던 달달한 바람이
비자나무 가지 위로 내려와 앉고
나는 힘껏 키를 높여
촘촘히 어린 푸른 열매들을 쓰다듬는다
숲의 정령이 오고가는 안개 사이로
스치듯 아버지와의 시간을 걸어가면
다시 바스락바스락
화산송이 밟히는 소리가 달달하다
 
△김양희: 제주도 서귀포 출생. 2004년 '시사사' 시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노이즈 동인. 2019년 제주문화예술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 '서귀포 남주 서점' '나의 구린새끼 골목'.

도순태 시인
도순태 시인

제주가 고향인 시인, 두 번째 시집 '나의 구린새끼 골목'을 출간하고 오래 뭍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제주로 간 시인. 제주의 말, 지명, 화산, 나무, 꽃들을 통해 제주를 넉넉하게 부려 놓았다. 제주는 시인의 사유의 산실이었고 위로가 되는 넓은 품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할 말이 많았고 더 깊은 제주 속내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비자림 화산송 붉은 길을 시인의 유년이 '보시락 보시락' 걸어간다. 묘사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은근한 사랑이 따뜻하게 밀려 오기도하는 '곰보사탕, 막대사탕'의 달콤함이 슬쩍 독자들에게 감각적 경험을 상상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기억은 다시 기다란 설레임이 되어 누구에게나 그 시간으로 여행을 감행하게 된다. 그 여행길이 다양한 행선지를 펼쳐 보이기도 하지만 시인에게는 '달달한 바람' '소리가 달달한' 길을 걷게 한다. 그래서 이미 마음은 현재에서 나와 그 순간에 투철한 집중이 보인다. '젊은 아버지' '어린 딸'이 걷는 풍경이 정겨웁게 시를 끌고 있다. 시인은 비자림 한 자락을 마음껏 품었고 그 마음 안에는 고향 제주에서만 알 수 있는 구충제 대신 했던 비자나무 열매의 떫은맛도 그리운 것이 아니었을까.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화산송이, 자꾸만 비자림 화산송이 길이 보이고 시인의 뒷모습 따라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비자림 숲길 어디쯤에 서 있을지 모를 시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어린 푸른 열매' 아래는 아무도 없을지도.  
 도순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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