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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정신은 맑은데 몸을 못 움직인다면 어떤 마음일까? 5년째 거동을 못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어머니께서 전의를 상실한 목소리로 살기 싫다고 말씀을 하실 때면,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아픔이 몰려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다치기 전까지 몸을 쓰는 농사일을 해오셨는데, 고관절이 부러지시면서 누워 지내는 신세가 됐으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몸과 정신의 불일치에 어머니께서는 자주 우울해하셨다. 예전의 건강 상태로 되돌리고 싶은 나의 바람과는 달리, 어머니의 회복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고관절 수술 후부터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케어를 하고 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케어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는 건 돌보는 이의 입장에선 매우 힘든 일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아픔을 마음으로, 몸으로 오롯이 느껴야 했기에 때로는 몸살에, 때로는 불안에 시달렸다. 작가로서의 삶과 어머니의 케어가 뒤섞이는 삶을 살면서 글쓰기의 리듬이 끊겨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그런데도 그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어머니께서 말년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보내셨으면 하는 바람이자, 후일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함께 있었다.

누워 지내신 지 만 4년이 지난 어느 날부턴가 어머니께서는 헛것을 자주 보셨다. '야시'가 보인다거나 뱀이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몸과 정신이 쇠약해지시니 자연히 헛것도 보이리라 여기며, 좀 많이 드셔야 헛것도 안 보인다고 위로해 드렸다. 옆구리 소독과 몸 닦이는 걸 마치고 잠시 쉬고 있었다.

"저기에 밀감하고 감하고 돈 있데이"
"어디에요?"
"내가 저기 밑에 잘 넣어뒀으니 나중에 챙겨 가래이"
"네, 그럴게요"

어머니께서는 늘 누워 생활하시기에 물건을 챙겨둘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긍정의 대답을 했다. 

"밀감하고 감이 얼매나 좋은지 몰라"

이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환했다. 살기 싫다며 푸념하시던 모습과는 달리 행복해 보이셨다. 그 모습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누워계시면서 딸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절실하셨으면 헛것이 다 보일까 싶어서였다. 

가끔은 내 삶이 많이 흔들려서 어머니의 병환으로 힘들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교통사고로 팔이 아픈 순간에도 어머니의 체위변경을 위해 팔을 써야 했고, 몸살이 나도 케어를 가야 했다. 자연스럽게 내 일은 엉망으로 돌아갔고, 가사에 소홀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내 선택은 어머니께 할 수 있을 때 효도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머니께서는 내가 힘들 때마다 옆에 계셨다. 이십 대 청춘 시절 객지에서 학교 다닐 때 꼬깃꼬깃한 돈을 쥐여주시곤 하셨다. 자식이 배곯을까 봐 그리하신 걸 테다. 임신해서 입덧했을 때, 아기를 낳았을 때,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등 인생의 고비마다 곁에서 힘이 돼 주셨다. 이제 누워서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인 때에 내가 어머니의 손발이 돼드리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소외되는 노인이 많다. 질병을 안고 빈곤한 상태로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매체에서 자주 접할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경제적인 가치로 모든 것이 결정되곤 하는 현대의 약삭빠른 행태가 안타깝다. 

한시외전에는 '나무가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고자 해도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아직도 유효한 말인 것 같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할 일이다. 

딸에게 해주고 싶어도 마음대로 해주지 못 하는 어머니. 그 마음이 간절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리라. 어머니의 안타깝고도 고운 마음 한 자락을 읽고, 팔이 아파도 나는 또 힘을 낸다.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신 당신께 고운 웃음 찾아드리고 싶다. 부디 환우 중에도 자식의 이런 마음이 가닿아 행복하시기를, 어서 건강 회복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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