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영숙 수필가
정영숙 수필가

도보여행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다. 이 한파에 높고 험한 산에 들자고 했다면 어찌했을까. 거절하기도 그렇고 떠나자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이제는 버겁게 오르는 산행보다는 체력에 맞게 천천히 자연을 즐기며 걷는 게 몸에 맞는 옷처럼 편하다.

청년 시절, 짬만 나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고는 했다. 매일 직장 일에 시달리면서도 쉬는 날이면 산을 찾았고, 산에서 쉼을 누렸다. 교통수단이 원활하지 못했던 때라 다른 지역의 산을 오르려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산행을 하는 게 버겁다거나 피곤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젊음만 믿고 겁 없이 우쭐대다가 된통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이십 대 초반, 산악회 회원들과 지리산에 오르기 위해 주말 늦은 시간 중산리에 도착했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 일찍 자야 한다며 취침 시간까지 정해 줬지만 스물의 청춘이 어찌 골 깊은 개울 옆 민박에서 쉽사리 잠들 수 있겠는가. 들키지 않으려고 신발을 들고 숙소를 빠져나와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개똥철학을 늘어놓았다. 차디찬 가을바람이 온몸에 스며들어도 마냥 행복했다. 한잠도 허락하지 않은 채 새벽을 맞았다.

입이 깔깔해 아침밥은 건너뛴 채 천왕봉을 향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첩첩의 골짜기마다 안개를 품어 몽환적이고 신비로웠다. 한마디로 감동 그 자체였다. 당시는 칠선계곡 쪽 등산로를 제한하지 않아서 그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산 대장이 길을 잘못 들어 한참 동안 산속을 헤매다 날이 저물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계곡에서 비박을 하기로 했다. 하늘을 지붕 삼고 바위를 베개 삼아 선잠으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뜨니 몸이 천근만근인 데다 속이 메스꺼웠다. 계곡이 빙빙 돌고, 나무가 정신없이 넘어지고, 땅바닥이 벌떡 일어났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회원들은 먼저 하산을 하고 나와 산 대장, 그리고 든든한 체력을 자랑하는 회원 한 사람만 남았다. 남은 두 사람이 교대로 업고 내려갈 것이니 업히라며 웃었다. 조금만 쉬면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잠시만 쉬자고 그들을 설득했다. 어깨를 주물러 추위에 굳은 몸의 혈액이 돌게 하고, 침낭으로 몸을 감싼 후 누룽지를 끓여줬다. 따뜻한 숭늉을 마셔서인지 잠이 쏟아져 잠시 눈을 붙였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반나절을 걸어 비선담이 가까웠을 때 앞서간 회원들의 뒤를 간신히 따라붙었다.

젊음만 믿었던 무모한 행동이 화를 불러온 것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던 겁 없는 나이였다. 첫날은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는 선배들의 말을 무시한 채 밤을 꼬박 새웠고, 둘째 날은 길을 잃는 바람에 산에서 헤매다 비박을 했다. 산행을 떠나기 전 일이 있어 잠을 못 잔 날까지 합하면 연사흘 동안 잠을 설친 데다 장시간 걸어 체력이 바닥난 것이었다. 그나마 그 정도로 체력을 회복한 것은 함께 한 일행의 경험이 도움을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시절 나는 산을 오른다는 그 자체를 즐긴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높고 험한 산 정상에 올랐다는 만족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떤 산의 정상에 몇 번 올랐던가를 생각하면 흐뭇했다. 그러고 보면 산은 나는 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산에 오를 때마다 남들보다 먼저 정상에 올라야 하고, 남들보다 더 빨리 하산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내 뜻대로 될 것 같아 자신만만했었다. 경험 많은 선배들의 말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넘치는 나의 열정을 믿었다. 무모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마는 자신의 젊음을 더 신뢰했다.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를 당시는 몰랐었다.

이제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에 수긍하는 나이가 됐다. 욕심낼 일도 그리 많지 않다. 산을 오르더라도 그 산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마음이 움직인다. 험하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부드러운 능선 길을 걷는 것이 즐겁다. 남들보다 먼저 오르기보다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산행이 좋다.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미소 짓는다. 내 발길을 비껴가는 개미 한 마리에도 고마움을 느끼고, 잎을 떨구어 봄을 준비하는 나무를 보면 겸허해진다. 스물의 청년 시절에도, 불혹의 중년에도 버리지 못했던 무모한 치기를 이제 내려놓게 됐으니 철이 좀 드나 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질수록 살아있는 것들이 소중해진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마른 풀잎 하나, 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하늘과 바람을 즐기는 이 시간이 참으로 푼푼하다. 지나친 욕심으로 심신을 혹사하거나 무모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 깜냥껏 살아가는 오늘이 좋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