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19 팬데믹과 적당한 운동
코비드19 팬데믹과 적당한 운동
  • 안성길
  • 2021.12.30 17:25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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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안성길 시인·평론가
안성길 시인·평론가
안성길 시인·평론가

지난 9월 도산 안창호함에서 발사에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0월에 발사한 우주발사체 누리호 등 일련의 국가적 성과를 목격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먼저 스친 생각은 미·러와 같은 군사 강대국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리나라도 드디어 개발의 발판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제 북한의 핵실험과 같은 끊임없는 도발로 속수무책 떠안게 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해결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말로만 늘 듣던 자주국방의 실체가 비로소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스친 건 우리의 엄청난 노력과 역량에도 우리 기업들의 주가와 생산품이 OECD 선진국에 비해 약 40% 가까이 평가절하 당하는 주 요인이 안보불안이란 전문가의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받은 필자의 충격은 예상외로 컸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다음에 떠오른 이미지는 지구 궤도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생활하는 우주인들의 유영 장면이었다. 초등 저학년 어느 날, 영화관에서 단체로 디즈니의 애니 피터팬을 관람하고 늦게 집에 와서 곧장 잠들었었다. 그날 꿈속에서 어린 필자는, 어른이 되기 싫은 웬디와 웬디의 남동생들이 팅커벨의 마법가루로 인해 하늘을 날게 되자 피터팬과 함께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네버랜드로 날아가 정신없이 놀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피터팬에게 한 손을 잃고 갈고리를 한 악당 후크선장에게 필자만 붙잡히는 순간 꿈을 깼다. 그때 이부자리에 실례를 범하고 앞집으로 소금사발을 들고 가야했지만 이후 하늘을 날아다니던 꿈은 공군사관학교까지 꿈꾸게 했으나 성적 부족으로 아쉽게도 접고 말았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하늘을 나는 나비, 야구공, UFO 등 날아다니는 것이면 무엇이나 눈길이 먼저 가곤 한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이 연구와 실험의 임무를 수행하며 생활하는 무중력 환경에서도 일정 시간 의무적으로 체력단련을 하는 영상을 신기한 듯 본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그들이 지구로 귀환할 경우, 감당해야할 지구 중력이 생각 외로 강해서 사전에 미리 적응에 염두를 둔 조치라 한다.

학성중학 시절 운동을 좋아해 선배들과 같이 날마다 덕하 검문소까지 뛰곤 했다. 다 함께 뛸 때면 힘은 엄청 들어도 소금이며 땀범벅의 몸을 씻고 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군에 입대해 강원도 산길을 단독군장 혹은 완전군장으로 뛸 때도 시작은 많이 괴로웠지만 끝내고 씻을 때는 대부분은 즐거웠다. 지금은 바쁜 일상을 핑계로 운동을 못하니 늘 몸이 무겁다. 그래서 승용차를 버리고 버스를 타고 다닌 지 칠팔 년쯤 되었다. 허나 일이 자꾸 바빠지니 바로 집 앞에서 타고는 근무하는 학교 가까이 내리는데, 필자의 관리 잘못으로 얻은 지병을 생각해 두세 구간 전에 내리려고 노력하지만 자주는 못해 많이 아쉽다. 

그런데 코비드19 팬데믹 상황이 이제 만 2년이 돼 간다. 여차하면 목숨을 부질없이 잃는 상황이니 이런 횡액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와 일터며 생활현장이 마냥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보건 전문가들은 초기에는 노년층의 중증 감염과 의료 인력의 피로누적과 스트레스를 심히 우려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겪어내야 할 집단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동과 모임의 제한에서부터 마스크 밀착해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은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생존의 벼랑으로까지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 보통의 사람들 역시 생활 곳곳에서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뻔히 보이니 집단적 스트레스의 가중은 도저히 피할 방안이 없어 보여 무척 안타깝다. 그래도 최근 여러 보건 전문가로부터 희망적인 조언을 듣고는 나름 위로가 됐다. 

그것은 우리 인류의 몸은 근본적으로 일정하게 움직여야 건강이 유지 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즉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체중을 조절할 수 있고, 소위 푹 잔다는 나비잠을 자게 해 질병 퇴치에도 많은 도움을 준단다. 그리고 만병의 근원이라는 긴장 곧 저 스트레스까지 부드럽게 풀어주고 사람을 발랄하고 활동적이게 해 생동감 있는 건강한 생활을 하게 한단다. 그러면 뇌의 몇몇 화학 물질을 자극해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가 되어 심리적인 여러 형태의 불안으로부터도 결국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한다.

나무위키에도 "운동을 하는 것은 뇌를 쓰는 것과 같고, 애초에 뇌 자체가 신체를 움직이기 위해 진화하고 발달한 것"이란다. 이처럼 운동은 지금과 같은 경우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고, 나이를 먹을수록 체력 또한 떨어지기 마련인데 주지하다시피 이런 노년의, 나아가 대부분 사람의 삶의 질과 행복한 일상은 건강과 적당한 운동 말고는 답이 별로 없어 보인다. 

몇 해 전 우리글진흥원 강상헌 원장이 한 글에서, "1906년 '대한자강회월보'에 '교육세'란 제목으로 실린 글"의 일부인, "'무릇 교육은 체육 덕육 지육의 3대강이 있어야 할지니…' 이 같은 체덕지 순서의 글"이 당대엔 많았고, 또한 "셋 중 취해야 한다면 덕과 지혜를 버리고 차라리 체육"을 취하겠다는 대한매일신보 한 구절까지 더해, 건강한 몸일수록 건강한 정신이 잘 깃듦을 강조했다. 지금의 어려움에 처하고 보니 진정 혜안이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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