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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울산행복학교 교사
이연재 울산행복학교 교사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는 상황, 조건, 여건 등이 난무하지만 단 하나 공평한 것이 있다.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꼭꼭 씹어 먹다 보면 어느새 신체는 성장하거나 노쇠한다. 청소년·청년기에는 성장에 방점을 둔 삶이지만 이후의 삶은 거침없이 노쇠의 길로 접어든다. 나이 듦이 왜 노쇠인가? 나이는 숫자에 불가하다. 젊은이들이 겪어보지 못한 차곡차곡 묻어둔 인생 경험의 양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꺼내어 쓸 수 있기에 그들보다 유연하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한 토막의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글로 만났기를 망정이지 대면한 상황이었다면 속으로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라고 읊조리며 겉으로는 사회화 과정에서 배운 예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주억거렸을 거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농경 및 산업사회에서는 켜켜이 축적된 경험의 양은 미래 세대에게 꼭 필요한 자양분이었다. 농경 시절 홍수로 농사를 망쳐본 이전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홍수에 대비하여 양수기 사용법, 논에 물을 빼서 물길을 터주는 방법, 비 오기 전 나타나는 자연현상 등의 오랜 세월 겪었던 경험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도제식 교육이 주로 이루었다. 산업 현장에서는 수 십 년 동안 겪었던 사건·사고들을 선배들이 손수 후배들 입속에 떠먹여주며 굳이 겪지 않도록 하거나 겪더라도 미리 답안을 본 후배가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선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경험의 양이 찬란하게 빛을 바라던 시대는 존재했고 지금도 현존하고 있지만 이제는 '양'을 중요시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유튜브는 2005년에 출시되고 이후 구글에 인수되어 몇 년 만에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유튜브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 유튜버들은 가족 내에서도 컴퓨터 앞에서 뭘 하는지 모르는 종속들처럼 보였고 이해할 수 없는 구조에 따른 수익창출에 의뭉스러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초창기 유튜버들의 넋두리를 듣다 보면 그들이 받은 핍박은 손수건 2장 정도는 촉촉하게 젖을 정도로 눈물겹다. 유튜버가 되는 길은 10분 안에 가능하다. 유튜브에 가입하여 채널만 개설하면 된다. 몇 년 간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선배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고 나이 제한도 없다.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과 재능을 거침없이 발현만 하면 되는 곳이다. 필자는 경험의 질로 승부 보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유튜브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경험의 질은 기존에 해왔던 일을 낯설게 바라보고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뛰어들 때 깊어진다. 나이 듦에 따라 신체는 약해지기 마련이고 에너지는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에 비해 떨어진다. 간당간당한 에너지는 낯섦보다는 익숙함에 자신의 어깨를 내준다. 가장 안타까운 건 마이크 볼륨과 크기 그리고 마이크를 잡는 횟수는 나이가 들수록 커지고 늘어나서 참신하고 재기 발랄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보기 좋은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한 번씩 마이크를 넘겨줄 때도 있지만 진정성은 다소 떨어진다. 거의 이미 답은 정해졌고, 그냥 어린 친구들은 머리만 주억거리면 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기존의 문법을 버려야 할 시대가 왔다. 새로운 문법은 기존 문법에 물들지 않은 다음 세대들을 위한 것이다. 어설프게 필터 역할을 한다고 자처하지도 말자. 농경사회처럼 한 해 농사 실패로 몇 개월을 쫄쫄 굶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시대도 아니고 산업사회처럼 나사 한 개의 비극으로 신체 일부를 도려내는 상황이 펼쳐지는 시대도 아니다. 젊은 세대들이 겪는 실패를 묵묵히 바라보며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 정도만 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물러날 때를 알고 물러나는 세련된 뒷모습을 그들에게 잔상으로 남기자. 옷자락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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