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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횃댓보 
 
 임성화
 
 횃댓보 너머를 본다
 남색 치마, 몸빼 바지, 올 풀린 쉐웨타, 
 검정 신사복, 낡은 와이셔츠,
 
 내 작은 몸피 둘 곳 없다
 
 둘러 앉아보니
 와이셔츠, 내 오른쪽 어깨에 얹히고 
 신사복, 내 왼쪽 어깨에 얹히고
 쉐웨타, 내 오른쪽 다리에 감기고
 몸빼 바지, 내 왼쪽 다리에 감기고
 그래, 이제 여유가 보인다
 
 그때 당신의 나이 되고 보니
 울음 우는 즐거움.
 독백 하는 즐거움.
 배곪는 즐거움.
 
 그 즐거움들
 보이지 않던 이 허방에서 누리누나
 
 지난 세월만큼
 내 가슴에 구멍 나고
 그 구멍만큼
 횃대너머 몸피만큼의 체적으로
 숨 쉴 곳 생겨나니 
 우린 천생 모녀이군요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임성화: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제29회 성파시조문학상 제11회 울산시조문학상. 시집 『아버지의 바다』『겨울 염전』, 동시조집 『뻥튀기 뻥야』
 
 '횃댓보!'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5~60년 전 기억의 한 켠에 있는 아낙의 언어다. 그 당시 집안 언니들은 결혼 날이 정해지면 하얀 옥양목에 가장자리를 여미어 색색의 수를 곱게 놓아 횃댓보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시집갈 때 예단처럼 모셔 가져갔었다. 시집오는 올케도 마찬가지로 곱게 수 놓은 횃댓보를 모시듯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한쪽 벽에 못을 군데군데 치고 걸어두는 걸 보았다. 그렇게 횃댓보는 옷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신혼의 약속처럼 새살림의 필수품이 되었었다. 신방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귀한 옷가지를 보관 해 주기도 하였다. 하여 신혼을 묵언으로 다독여 주는 어머니 품 같은 공간이었다. 
 임성화 시인은 참 귀한 글감을 불러와 잊어버린 추억을 소환해 주어 그리움 한 켠을 따뜻하게 더듬게 한다. 이 시를 읽으면 지척에 이웃을 두고도 먼 당신으로 사는 우리들의 오늘, 아파트의 삭막함을 지우고 두런두런 정다운 이웃들의 말이 들리는 듯 하다. 
 
둘째 연에서는 '내 작은 몸피 둘 곳 없다고 쓰다가 이제 여유가 보인다'라고 쓰고 있다. 좁고 작은 것에 순응하는 여유의 넉넉함이다. 작고 다정한 은유가 신선하고 재미있다. 틈새에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숨겨 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어 시인은 독백도, 배고픔도 즐거움이라고, 가난을 승화시키고 있다. 소유가 넘쳐나는 이 시대 부족해서 더 다가가고 싶은 다시 마음의 발견같은 다정한 정서를 찾아 주는 횃댓보, 기억 저편을 더듬게 해 주어 참 고맙다. 
 
마지막 행에서는 '우린 천생 모녀이군요'로 절창 한 소절을 내어 보이며 살짝 능청을 떨며 우리의 힘들었던 어제를 다독이고 있어 마음이 더 짠해진다. 그래도 이 아쉬움이 차라리 다정하게 다가오는 건 어머니의 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리라. 하여 이 마지막 시구는 매를 치고 돌아서서 눈물짓는 어머니의 다정함을 보는 듯 하다. 이렇게 '횃댓보' 시에는 햇살을 품은 듯 포근함이 묻어난다.  

바쁜 오늘을 사는 우리, 마음의 횃댓보 하나쯤 마련하면 어떨까. 간섭받지 않고 편하게 꺼내 입을 수 있는, 모녀 사이같은. 시인 서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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