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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3월 동해 끝자락 바닷길을 처음 밝힌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 등대는 현재 높이 17m인 3세대 등대가 이어 지키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1920년 3월 동해 끝자락 바닷길을 처음 밝힌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 등대는 현재 높이 17m인 3세대 등대가 이어 지키고 있다. 2022. 1. 4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2022년 첫 일출을 보기 직전이다. 만날 때마다 파랑 내기에 여념 없는 바다와 하늘이 유튜브 화면에서 까맣다. 여기에도 점점이 소망 같은 빛은 있다. 수평선에서 보내오는 선박들의 작은 불빛들, 어제 깎은 손톱에 똑 따다 붙여서 내일의 그믐에 절대 내어주고 싶지 않은 하얀 손톱달. 해가 뜨려나, 수평선 쪽이 붉어지면서 긴 수평 무지개를 그려낸다. 새벽(새롭게 열린다)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어여삐 피어나는 때가 또 언제일까.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새해 첫날 첫해를 밝은 파도 음률로 두근두근 기다린다. 수평선을 발갛게 물들이며 해가 얼굴을 내민다. 1월 1일 07시 31분.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사진에 담는 첫날 첫 기쁨들이 찰칵찰칵 해만큼이나 붉다. 두꺼운 외투 속에 담아온 하나하나의 소망들도 해를 맞이한다. 눈길이 부딪친 사람들이 웃음으로 덕담을 나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 해도 건강하세요. 호호 손을 불며 입김으로 퍼져가는 목소리들이 따뜻한 밥상처럼 정겹다. 아기 순산해야지, 대학 합격하고, 아들 군대 잘 다녀오라 하고, 올핸 취업하겠지, 건강이 최고야, 운동도 하고, 장가도 가고, 사업도 잘돼야지. 그나저나 이놈의 코로나가 사라져야…. 새해 소망은 가지가지이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행복 기원이 언제나 으뜸이다.
 약간의 구름에 가려 완벽한 오메가(Ω) 모양은 아니었지만, 고맙게도 5개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수만 명이 동영상으로 새해 첫 일출 장면을 시청했다. 코로나 방역 지침으로 주차장 출입이 막혔으나, 지난해와 달리 공원은 개방하여 400여 명이 모여들었다는 소식이다. 얼마 후 나는 앞동산에 오르는 첫해를 실황으로 맞이했다. 08시 26분, 약 1시간 차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르지 않을 해가 새해 첫날 더 설레고 기쁜 까닭은 뭘까. 작년에 이루지 못한 소망을 새롭게 이루겠다는 각오 같은 것일 게다.

간짓대 모양으로 솟아 있는 '간절곶'
그런 일념을 차일피일하며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 같아 지난 연말에 간절곶을 찾았다. 내가 사는 서울주에서 이곳 남울주까지 자동차로 1시간 거리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안 산책길을 걸었다. 칼바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채 뒤뚱거리니 운 좋게도 바닷바람이 몸을 떠밀어 준다. 조형 하트 두 개가 선명한 대송항방파제등대 입구를 지나니 시계탑광장과 간절곶 일대가 훤하다. 서너 해 전의 방문 때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연말연시 분위기로 일렁이는 공원엔 활기가 넘치고,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속속 도착한다. 해안로를 걸어가니 오른편 언덕배기에는 등대가, 왼편에는 소망우체통과 '간절곶'을 새긴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 뒤에서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간절곶은 남해와 만나는 동해의 끝자락이다. 바다에서 보면 간짓대 모양으로 뿔룩 솟아 있어 간절곶(艮絶串)이라 한다. 옜다 여기 네 소망, 하며 길고 긴 간짓대에 매달아 휙 던져줄 듯한 옥빛 기운이 곶으로 곶으로 밀려든다. 바람이 부풀린 빵빵한 패딩에 욱여넣은 간절함이 터지지나 않을까 애써 바람을 등진다. 문득 바위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을 찾은 분과 그 후손은 새천년에 영원히 번성할 것이다.' 새천년의 시작을 우렁차게 울린 2000년의 해맞이를 떠올려 본다. 텔레비전 방송의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소원을 빌었던가, 깊이 잠든 아이 둘을 억지로 깨워 바닷가로 나섰던가, 가물거리지만 그 일이 마치 엊그제 같다. 

매해 열린 간절곶 해맞이행사가 신종 코로나 여파로 2년째 취소된 가운데 임인년 새해를 한산히 맞는 해맞이 행사장.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매해 열린 간절곶 해맞이행사가 신종 코로나 여파로 2년째 취소된 가운데 임인년 새해를 한산히 맞는 해맞이 행사장. 2022. 1. 4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해맞이 행사 치른 2000년부터 유명세
바닷바람을 등 뒤로 밀어내며 후문 쪽의 등대 계단을 오른다. '간절곶등대, 실시간 영상방송 안내'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어 현장에서도 버릇처럼 유튜브를 켜본다. 자신의 모습도 찾아보라 하니 눈이 번쩍 띈다. 내 모습은 안 보이지만 바다는 작은 화면에서도 파랗고 기운찬 빛깔이다. 1920년 3월 26일에 처음 불을 밝힌 간절곶등대가 10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06년에 세워진 대왕암공원의 울기등대처럼 일제강점기 때 세워졌다. 백세 시대를 외치는 시절이지만 그만큼을 건강하게 살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 이곳 등대도 새 세대에게 자리를 두 번 내주었다. 1979년 1월부터 2001년 5월까지 밤바다를 비추던 2세대 등대는 상단부를 복원한 조형등탑이 되어 담장 가까이서 고요하다. 내부에 등명기와 등롱(등명기 보호 구조물), 옛 사진이 들어 있다. 그 곁엔 무신호기 구조물이 기다란 높은음자리표를 새기곤 4기의 나팔을 품고 서 있다. 밤바다 5.5㎞까지 55초마다 5초씩 위험신호를 내보낸다. 3세대 등대인 신 등탑은 2001년 5월 31일 '바다의 날'에 개축한 8각의 흰 등대로 17m 높이다. 10각의 동기와지붕과 전망대 형상이 등명기를 감싸고 있다. 등명기는 백색 섬광을 48㎞ 거리까지 비추며 동해남부연안 선박들의 안전항해를 돕는다. 

102년째 불 밝히고 있는 간절곶등대
간절곶등대는 장대한 해맞이 행사를 치른 2000년부터 널리 알려졌다. 동북아내륙 해안에서 가장 먼저 새천년의 해가 뜬다는, 국립천문대와 새천년준비위원회의 발표가 있고서다. 울산해양수산청에서도 새천년을 상징하는 등대로 개축, 해양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등대 홍보관도 포토존이 있는 옥상도 여느 등대와 다름없이 자물쇠가 걸려있다. 등대를 감싼 요술 거울 앞에서 뚱뚱이와 홀쭉이로 변신한 내 모습을 찍어본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도 오가다가 찍혔으려나. 서쪽 하늘을 향해 횃불을 들고 선 '태양의 신 헬리오스' 청동상 앞에서 다시 바다를 본다. 등대 정원에서 바라보는 파란 세상은 이곳의 바이러스 천국과 단절된 유리문 너머 같다. 저 넓고도 깊은 평화가 그리워서 사람들은 바다로 등대로 발길을 재촉하는 것이리니.

소망우체통 앞에서 새해를 축복하는 연인들이 추억을 담고 있다.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소망우체통 앞에서 새해를 축복하는 연인들이 추억을 담고 있다. 2022. 1. 4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정문 밖으로 나선다. 친구 사이인 듯한 두 할머니가 서로의 비뚤어진 머플러를 고쳐 매준다. 인도에 놓인 화분마다 들어찬 꽃배추는 이 찬 날에 어쩜 저리 온몸을 곱게 물들였는지. 언덕배기 조각공원의 조형물들은 울타리 너머의 등대와 어우러져 저 너머를 한없이 바라보고 섰다. 관리소 담장 서쪽의 솔숲 사이에 오늘의 해가 내려서 있다. 등대 정원을 지나 소망우체통으로 간다. 1970년대의 우체통 모양을 2006년에 높이 5m, 폭 2.4m로 세운, 이곳의 명물이다. 어린 날의 나에게 엽서를 보내볼까. 인사든 대화든 손끝 터치로 해결되는 시대라 우체통은 그저 길손들의 인증샷 노릇을 한다. 등대를 비추며 떠난 오늘의 해가 선물처럼 걸어놓은 놀을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해안길을 걷는다. '당신의 간절함을 응원합니다'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곶, 간절곶' '빌어봐 소원 한 가지 정도야, 들어줄지~' '내일부터 당신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입니다'라는 소망길 울타리의 글귀들이 간절함을 부추긴다.

해맞이행사가 코로나 여파로 2년째 취소된 가운데 새해를 반기는 호랑이 인형이 외로이 서있다.
해맞이행사가 코로나 여파로 2년째 취소된 가운데 새해를 반기는 호랑이 인형이 외로이 서있다. 2022. 1. 4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우뚝한 '새천년의 비상' 돌탑을 지나니 공원이 오색찬란하다. 드림 빌리지 인 울주(Dream Village in Ulju) 코너에는 임인년의 선물상자를 든 귀엽고 씩씩한 호랑이가 오르골을 타고 도는 조형물이, 그 양쪽엔 커다란 두 개의 트리가 연말과 연시 인사를 반짝인다. 그 뒤론 하늘색 지붕의 풍차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빛과 바람의 정원' 행사장. 오는 16일(17시~22시)까지 이어지는 빛 축제다. 물빛바람정원을 지나 풍차의 집에 들어가 본다. 어둠에 드는 바다와 갖은 불빛정원을 2층의 창으로 내려다보는 기분이 색다르다. 별빛정원 입구에 꽂힌 화려한 '2022' 조명탑을 지나 별빛·달빛·바람숲길·반딧불이옹기정원 들을 둘러보며 동화 세상에 빠져든다. 어른도 이리 즐거운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사람들의 들뜬 웃음을 이곳저곳에서 듣는 일도 크나큰 선물이다.

김려원 시인
김려원 시인
2017년 진주가을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climbks@hanmail.net

17m 높이 3세대 등탑 안전항해 도와
철썩이는 바다의 어둠을 돌아본다. 간절곶등대가 15초에 한 번씩 내보내는 깜빡임도 돌아본다. 간절곶항로표지관리소에서 만난 한 직원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출근하는 아침이 하루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한다. 그저 얻는 자연이라 한들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랴. 그는 또 "1월 1일에는 독도 다음으로 간절곶 해가 먼저 뜨지만, 다음날부턴 지구의 자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지요."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데도 듣고 보니 낯설다. "그렇지요, 맞아요!" 우리의 해맞이는 늘 새해 첫날이고, 육지에서 가장 빠른 해를 만나는 간절곶으로 각인돼 있으니. 그렇지만 해 뜨는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일상이 얼마만큼이나 해의 하루처럼 충실한가의 문제일 뿐.
 새벽에 눈을 뜨면, 그곳을 다녀온 지 보름이 넘은 지금도 간절곶 앞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등대가 마주하는 간절곶 아침 해의 소망들이 종일 밀려든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에 나오는 싯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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