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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인간 책표지.

한 여자아이가 혼자서 여러 가지 놀이를 했지만 이내 심심해졌습니다. 둘러보던 아이는 신문지를 갖고 놉니다. 신문 모자도 만들어 쓰고 배를 만들어 어항에 집어넣기도 했지요. 하지만 아이는 이 신문지 놀이도 시시해졌습니다. 
 
아이는 신문지로 저와 같은 사람을 만들어 놀았습니다. 여자아이는 종이 인간을 놀이터에 있는 친구들에게 데리고 갑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던 종이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신문 기사였던 거죠. 전쟁과 사고,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아이들은 슬픈 얼굴을 하거나 몇몇 아이는 아예 울음까지 터트립니다.
 
당황한 종이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이들을 슬프게 한다는 걸 알고 그들의 곁을 떠나 방황합니다. 이후 빨래방에서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세탁한 종이 인간은 눈처럼 하얗게 변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놀이터 아이들에게 달려가 함께 놉니다. 그는 다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빨래방에서 말끔하게 세탁했으니 자신의 몸은 텅 비어 버렸던 거죠.
 
너무 슬픈 종이 인간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 
 
'종이 인간은 도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들판으로 나왔어요. 
들판으로 나온 순간, 종이 인간은 너무 행복했어요.
종이 인간은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종이 인간은 자기 호주머니에 새 한 마리가 들어 있다고 상상하며 활짝 웃었어요.'
 
이렇게 들판에서 뛰어다니는 동안 종이 인간의 몸은 새롭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찹니다. 기분 좋은 이야기로 가득 찬 종이 인간은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와서 그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신문의 역할과 기능에 관해 쓴 책이지만 저는 종이 인간이 궁금해서 읽었습니다. 그 얇은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조희양 아동문학가

어릴 적 공책 뒤에 있던 종이 인형과 옷을 오릴 때가 생각납니다. 서툰 가위질에 인형과 옷 테두리 조금이라도 더 잘려나갈까, 조심조심, 가위 낀 엄지와 검지에 힘주던 일. 그렇게 제 손에서 생명 얻은 예쁜 인형과 옷들은 내게 나쁜 말도 하지 않고, 내가 힘들 때 위로해주는 맞춤형 친구였지요. 살짝살짝 터치만 해도 넘어가는 전자책이 익숙해지니 종이로 만든 책이 애틋해지려 합니다. 마른 질감이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종이 책, 종이 인간.
 
동화에서 왜 '호랑이가 말을 해?' 묻는 순간 판타지는 사라진다고 합니다. 동심이 살아있는 아이들은 호랑이나 여우가 말을 해도 의심 안 한다고요. 그래서 저는 동화가 좋습니다. 
 
신문지로 만든 인간이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면 같이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재미있는 세상이 좋아서 동화를 읽고 씁니다.  아동문학가 조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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