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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출고
 
마경덕
 
카 캐리어가 차를 업고 지나간다
이층에 둘, 아래층 하나, 차 넉 대가 한 몸이 되어 달린다
갓 출고된 소나타 아반테 베르나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신차들
삶은 연습이 없다는 걸 모르는 초보들
덩치 큰 차에 업혀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신호등에 읽힌 사거리가 풀어지는 동안
높은 곳에 얹혀 으스대는 초보들
기운차고 매끈한 온몸에 광택이 흐른다
세상으로 나온 초행길, 한 번도 들이받은 적 없는 
헤드라이트는 호기심에 반짝인다
어미 등처럼 편안한 저 등은 처음이자 마지막
딱 한 번 업히는 호강은 차를 만든 사람들의 마지막 사랑이다
태클로 발을 거는 세상,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기까지
저들은 행복한 신차이다
탱탱한 네 개의 바퀴가 바닥에 닿는 순간,
내비게이션에 묶여 진창길 오르막도 뛰어들어야 한다
평생 달려야 할 저 길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고
순순히 길을 따라가는 저것들
제자리가 아닌 곳에 함부로 들어섰다가
두 발로 서서 끌려가기도 할 것이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을 때까지
길은 쉽게 저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 마경덕: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그녀의 외로움은 B형''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북한강문학상, 두레문학상, 선경상상인문학상 수상.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차량 운반차가 신차를 싣고가는 모습을 그린 시다. 자동차의 도시 울산에서는 자주 보이는 풍경이다. 캐리어의 등에 업힌 차들은 반짝반짝 신이 난다. 세상에 첫발을 디디기 위해 볼트도 조이고 새 이름표도 달았다. 그의 매끈한 몸은 이제부터 펼쳐질 미지의 신세계가 궁금하기만 하고 핸들은 새 주인을 만날 기대로 원심과 구심의 균형을 확인하며 설렌다.

 캐리어가 등에 업은 신차를 새로운 장소로 운반하고 있다면 이 시를 독자에게 운반하고 있는 것은 모성이다.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아이를 바라보는 염려가 시의 전반에 흐른다. 시인이 먼저 가본 길은 반듯한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태클을 거는 발도 있고 진창길 오르막길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제 길이 아닌 곳으로 잘못 들었다가는 두 발로 끌려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없이 부풀어만 있을 헤드라이트의 호기심과, 높은 곳에 얹혀 신나는 바퀴 등 시인의 모성은 풍경의 곳곳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딱 한 번 업히는 저 호강이 끝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길은 문득문득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평생 달려야 할 저 길은 탱탱하게 부풀어 있는 공기압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미리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바퀴가 평생 그려낼 동그라미를 위해서는 그 앞에 펼쳐질 길의 내면 또한 미리 살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왜 이 시에서 "울음 우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하는 안톤슈낙의 수필이 생각날까. 그 첫 구절에 꽂혀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던 유년의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걸까.
 나의 모성도 어느새 달려와 이 차에, 이 시에 동승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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