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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 울산 남구청장

조상이 덕을 쌓아야 올 수 있는 곳. 울릉도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창밖의 바다는 말없이 매서운 파도만 몰고 올 뿐이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300여 년 전, 일본인들의 무단 침범을 항의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받기 위한 박어둔과 안용복의 2,000리 뱃길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는 더 험난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독도'와 관련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다들 안용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안용복은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그의 곁에는 울산 출신 '박어둔'이 있었다. 왕족도, 사대부도 아니지만 당당히 역사에 이름을 남긴 두 민초의 독도 수호 이야기는 울산에서 시작됐다.
 
숙종 19년인 1693년, 울산의 어부 박어둔과 동래의 어부이자 수군 군졸인 안용복은 다른 일행들과 고기를 잡기 위해 울산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를 향했다. 그 시절 울산은 동해바다로 출어하는 어민들의 중요거점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만선의 꿈을 품고 도착한 울릉도에서 마주한 건 무단으로 영토를 침범한 일본인들이었다. 이들에 당당히 맞서 싸웠던 두 사람은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도와 울릉도가 우리 땅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일본인들의 무단 침범을 항의해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서계를 받고 고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대마도주의 농간과 계속된 일본인들의 월경에 3년 뒤 안용복이 다시 나섰다. 
 

울산에서 어민들을 이끌고 울릉도로 가 무단 조업 중인 일본인들을 몰아낸 뒤 일본으로 뱃머리를 돌려 스스로를 울릉우산양도감세장(울릉도와 독도의 세금을 관장하는 장군)으로 칭하며 국경침범을 항의했다. 이러한 활약에 막부는 일본 어민들에게 울릉도와 독도에 어업활동을 금하는 죽도도해금지령을 내렸고 이는 17세기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가 자신의 영토가 아니라고 판단한 중요한 역사적 증거로 남았다.
 
이후 안용복은 나라의 허락 없이 일본에 가 스스로를 관리로 칭하며 항의한 것이 문제가 돼 귀양을 가게 됐지만, 당시 영의정인 남구만을 비롯한 조정대신들조차 안용복이 거둔 성과를 역사적 쾌거이자 큰 상을 내릴 행위라고 옹호하고 공적으로 인정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울산의 역할과 박어둔의 공적을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남구는 독도수호의 역사적 의의를 계승하고 21세기 환동해안 시대를 함께 이끌어 나가자는 의미에서 울릉군과 우호교류 협약을 맺게 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다 위로 여명이 밝아왔다. 붉은 태양과 함께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낸 울릉도를 바라보며 이곳이 대한민국 동쪽을 책임지는 영토임을 실감했다.
 

도동항에 도착해서 본 울릉도는 정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비의 섬 그 자체였다. 거북바위와 버섯바위, 한국의 10대 비경 대풍감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절경의 연속이었다. 독도를 볼 수 있다는 망향봉 독도 일출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 홀로 동해바다를 지키고 있을 독도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 못한 게 아쉬웠다.
 

그리고 안용복 기념관과 독도박물관 등도 방문했다. 삼국시대 우산국의 역사부터 박어둔과 안용복의 활약상, 1950년대 일본의 무단 침입에 맞서 독도를 지켜낸 독도의용수비대와 지금 이 시간에도 독도를 지키고 있는 독도경비대의 희생과 헌신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국토를 수호한 공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국토수호 기공불멸' 이라는 휘호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우리 땅을 지켜 낸 기개와 공적은 우리가 기억하고 후대에 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임을 다시 깨달았다.
 

한편으로 안용복의 뜻을 계승해 독도 수호의 역사를 품고 있는 울릉도를 보며 울산은 박어둔의 큰 뜻을 잊지 않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되돌아보게 됐다. 우리에게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울산 남구를 오랜 벗처럼 반갑게 맞이해 준 김병수 울릉군수님과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300여 년 전 독도 수호로 시작된 두 도시의 인연은 이제 21세기 환동해안 시대를 이끄는 국제도시로의 도약을 함께 꿈꾸게 됐다. 
 

앞으로 우리는 독도 수호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계승할 뿐 아니라 행정과 경제, 문화·관광·체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 울산 남구와 울릉군이 함께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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