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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사익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늘 눈물이 난다고 했다. 가슴을 에는 목소리에 동화되니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단다. 애써 참으려 해도 소용이 없다며 겸연쩍어한다. 지나간 추억과 기억에 도취돼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고도 했다.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마음속 응어리도 풀리고 위안이 되니 말이다. 필자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묘하게 감정이입이 된다. 


 지난 연휴에 방영된 '열린 음악회'도 필자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장사익 특유의 음색과 흥이 방청석을 휘감았다. 거문고 소리는 장렬했고, 가야금 선율은 감각적이었다. 객석의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진한 노랫말에 심취된 얼굴들이 여러 번 클로즈업됐다. 그들의 표정에는 우리의 가락이 흘렸고 흥이 넘쳤고 정이 스며있었다. 젊은 또래들은 크게 교감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필자의 세대와는 충분히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명절 때 듣는 음악치고 그의 노래보다 더 힐링을 주는 게 어디 있을까도 싶다.


 장사익은 이날도 어김없이 '찔레꽃'을 불러 심금을 울렸다. '아리랑' 장단에는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특히 아리랑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결코 싫증이 나지 않는다. 우리를 하나로 묶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저력이 있다. 10년 전인 2012년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제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리랑의 가사를 음미하면 어느 한 맺힌 여인의 슬픈 감정이 녹아나는 듯하다. 그런데 어원이 다양하단다. '아리랑(我理朗)'으로 풀어내는 학자도 있다. 매우 심오한 뜻이 담겨 있음에 놀라게 된다. '아(我)'는 참된 나(眞我)를 뜻하며 '리(理)'는 알다, 다스리다, 통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랑(朗)'은 즐겁다, 밝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아리랑은 '참 나를 깨달아 인간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로 표출했다는 해석이다. 그럴듯해 무릎을 치게 된다. 세상사 모든 게 '아리랑 아라리오~~~' 처럼 흥겹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하지만 살아가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당장 코로나가 숨통을 조인다. 하루하루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어디 하나 원망할 데도 없고 의지할 만한 자리도 없다. 그저 각개전투고 각자도생이다. 밥상머리 정치는 더 울화통을 터지게 한다. 가족 간 불화의 원인 제공자나 다름없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반목만 불러일으킨다. 혐오감과 무관심을 확대 재생산하고 책임을 전가할 뿐이다. 게다가 폭력성과 저질언어마저 퍼트리니 한심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곁에는 항상 작은(?) 영웅들이 있다는 점이다. 알아주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고, 몰라봐도 화내지 않는, 그저 묵묵히 일하는 의료진과 보건 관계자들이 있어 든든하다. 연휴 때 찾은 중구 종합운동장 코로나 선별검사소도 그랬다. 명절도 잊은 채 방역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안쓰럽기도 했으나 우러러 보였다. 어디 이뿐이랴. 자신의 일터에서 땀 흘리는 근로자들로 인해 그나마 용기가 생긴다. 헌신과 희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티 내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치유되고 공동체가 정화되는 법이다. 우리의 정치가 이를 조금이라도 본받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곤충학자의 얘기가 흥미롭게 들리는 것도 이런 연유다. 개미는 우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먹이를 저장하는 위가 두 개인데 '사회성 위'(social stomach)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개미는 여기에 저장된 것을 다시 꺼내 입과 입으로 동료에게 전해준다고 했다. 요즘 들어 더욱 바쁜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훨씬 커 보이는 것은 왜일까. 결코 선거시즌이라서 만은 아닌 듯해 씁쓸하다.


 소설가 한강이 쓴 '회복기의 노래'라는 시가 있다. 그의 유일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실렸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나도 한 번 따라 해 보았다. 그 친구가 떠올랐다. 꼼수 부리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속삭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를 꼬집어 주는 듯했다. 그날따라 겨울 볕이 유난히 따사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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