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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버섯을 따던 남편이 위기에 처한 드린바위. 맞은편으로 고헌산 우레들이 보인다.
석이버섯을 따던 남편이 위기에 처한 드린바위. 맞은편으로 고헌산 우레들이 보인다.

문복산 드린바위

# 채이짝만 한 지네·서말지 솥뚜껑만한 거미 살던 곳
문복산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과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14m로 영남알프스 최북단에 있다. 이 산 동쪽 8부 능선에는 드린바위(최근 들어 코끼리바위)라 불리는 높이가 130m, 둘레가 100여m에 이르는 높고 큰 층암으로 이루어진 바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바위의 형상이 마치 허공에서 산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이 바위를 드린 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오래전부터 이 바위는 험한 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석이(石耳)라 하는 돌 버섯이 돌 틈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따서 별미로 먹기도 했으며, 임금이 계시는 대궐에 조공으로 바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린 바위에는 지네와 거미들도 살고 있었다. 그 지네는 어찌나 큰지 채이(箕)짝만 하였고, 거미는 서말지 솥뚜껑만했다고 한다. 

# 아내 고함에 지네로부터 목숨구한 석이버섯 따던 남편
드린 바위에서 동쪽으로 마주 보이는 산이 고헌산(일명 와우산)이고, 산 서쪽 8부 능선 아래에는 학교운동장 두 세배 정도 크기의 우레들(石田)이 있다. 직선 거리상 약 6㎞정도 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우레들 부근에는 금실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날씨가 좋은 날이나 한가할 때에는 우레들 전망 좋은 곳에 앉아 맞은편 문복산 드린 바위를 바라보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도 나누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또한, 남편은 부지런하여 시간이 나면 틈틈이 버섯이나 약초를 캐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으며, 멀리 떨어진 이웃 동네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왕래하고 있었다.어느 날 남편이 마실을 갔다가 드린 바위에 석이버섯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남편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내일 버섯을 따러 간다고 했다. 남편은 버섯을 딸 때 필요한 길고 튼튼한 새끼줄이며 도구를 마련했다. 

예로부터 석이버섯은 귀하디귀한 버섯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버섯을 많이 따서 시장에 내다 팔면 아내가 좋아할 물건도 살수도 있고, 맛있는 버섯 요리도 해서 먹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평상시에 남편은 짚신이며, 새끼도 꼬고, 약초도 손질하며 밤늦게까지 집안일 해왔으나 이날은 내일 석이버섯을 따러 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일찍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섰다. 농사일이 없을 때 늘 해온 일이지만 오늘따라 발걸음도 한층 가벼웠다. 반나절이 채 지나기 전에 가파른 바위 능선을 타고 드린 바위에 도착했다. 바위 위에 도착한 그는 미리 준비해 가지고 온 길고 튼튼한 새끼줄 바위에 단단히 묶은 뒤 바위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크고 싱싱한 버섯이 많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이라 오직 새끼줄에만 의지해 버섯을 딸 수밖에 없었으며, 남편은 버섯 따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 그후 산내 사람들 '고헌산'을 '고함산' 이라 부른다네
한편 부인은 아침 일찍 버섯을 따러 간 남편의 시장기를 생각해 새참으로 흰죽을 준비해서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다. 평상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던 우레들에서 남편이 버섯을 따고 있을 드린 바위를 바라보는 순간 남편이 매달려 있는 새끼줄을 큰 지네가 물어뜯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남편은 버섯 따는데만 정신이 팔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턱이 없었다. 부인은 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게 누구 없어요. 우리 남편 살려주소! 우리 남편 좀 살려주소!" 발을 동동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만 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머리에 이고 있던 흰죽을 모두 쏟아버렸다. 순간!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큰 거미가 지네를 쫓아버리고 끊어질 듯한 새끼줄을 거미줄로 이어 구사일생으로 남편은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로부터 경주 산내 사람들은 고헌산(高獻山)을 '고함산'이라 부른다. 

지금도 상북면 덕현리 삽재마을 광바위를 옆으로 돌아 경주 산내로 넘어가는 외항재에서 동쪽으로 고헌산 중턱 8부 능선의 넓은 돌들긍(巖田) 상부에는 흰색 모양을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이곳을 서너 차례 답사한 결과 그때의 전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우레들 상부 중앙 돌들긍에는 흰색을 띤 돌들이 얼기설기 섞여 있어 당시 부인이 이고 간 흰죽을 쏟은 밥알들이 흩어져 있는 형상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 중리 마을에 살았던 (고)박복수 할머니로부터 채록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임.

위기에 처한 남편을 구하려다 흰죽을 쏟았던 고헌산 우레들. 위쪽엔 그 전설을 이야기하듯 흰색의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위기에 처한 남편을 구하려다 흰죽을 쏟았던 고헌산 우레들. 위쪽엔 그 전설을 이야기하듯 흰색의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산갈치와 고헌산 우레들 

# 고헌산 서쪽 산기슭 8부 능선 우레들이라 불리는 너덜겅
울산 울주군 상북면 고헌산 서쪽 산기슭 8부 능선 중간쯤에 우레들이라 불리는 넓은 돌들긍(巖田)이 있다. '돌들긍'이란 큰 바윗덩이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인해 깨어져 산의 계곡을 덮고 그 밑으로 물이 흐르는 돌밭(巖田)을 말한다. 상북면 덕현리 삽재마을 광바위를 옆으로 돌아 경주 산내로 넘어가는 외항재에 오르면 바로 앞산 고헌산 서봉 중턱에 있는 우레들이 보인다. 학교운동장만 서너 배 크기만 한 큰 돌들이 가운데 능선을 두고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데 오른쪽의 것이 더 넓다. 이 돌들긍 밑으로는 사철 물이 흘러 '우르릉 쿵쿵'하는 소리가 들려 우레소리 같다. 해서 예로부터 '우레들'이라 했다. 

진희영 산악인
진희영 산악인

이곳은 산세가 아주 가파르고 험하며 여느 돌들긍 보다는 특이하게 사람의 출입이 불가능한 사지이다. 가파른 데다 얼기설기 어지러이 쌓여있는 이 돌밭은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와르르 무너져 산짐승마저 피해간다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우레들 가운데는 큰 돌샘(石泉)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는 산갈치가 살고 있다고 한다. 

# 그곳 산갈치가 놀래 바다로 돌아가면 흉년이 든다네
어른 서너 발쯤 되는 긴 산갈치는 원래 바다에 사는데 가끔 육지에 올라올 때는 시퍼런 빛을 내며 이곳에 들어와 서식하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거나, 놀라서 바다로 돌아가 버리면 그해 농사가 잘 안된다고 한다. 나무하러 간 머슴이나 소 먹이러 간 아이들이나, 봄철에 나물 캐려간 아낙네들이 잘 모르고, 이곳에 접근하면 멀리서 마을 노인네들이 못 들어가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우레들 돌샘에 사는 산갈치가 놀라서 바다로 도망을 가면, 이 지역에 가뭄이 들거나, 갑자기 우박이 내리거나 해서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레들 전설은 맞은편 서쪽 문복산 드린 바위와 전설과 함께 신비로운 우레들의 2대 전설로 남아 있다. 지금은 주변의 수목이 번성해 그 면적도 많이 줄어들었다. ※ 이 이야기는 필자가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삽재 마을에 사는 정실근(86) 어르신으로부터 채록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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