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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형 기둥 구조물에 한옥 형태의 지붕이 올려진 당사항등대.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팔각형 기둥 구조물에 한옥 형태의 지붕이 올려진 당사항등대.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바다에 오면 희한하게도 허기가 진다. 두어 평 남짓의 허름한 가게를 기웃거린다. 음료수를 사면 거뭇한 면장갑을 낀 주인장이 더께를 닦아내며 건넬 것 같다. "없어도 너무 없네." 컬컬한 목소리가 등 너머로 들려왔다. 물고기(우럭 같다) 한 마리를 요란하게 흔들며 한 중년이 다가온다. 해를 등진 낯빛이 가무잡잡하다. 그가 가게의 옆문 쪽으로 왔을 때 내가 막아섰다. 건너편에 있는 '당사 어촌계 해녀의 집'이 궁금하던 차다. 

 "저기요, 요 앞에 있는 당사 해녀의 집이 뭐 하는 데예요?" 반들반들한 물고기 눈빛으로 그가 투박하게 입을 연다. "물질한 해녀들이 씻고 옷 갈아입고 쉬고 그라는 데요. 보니까네 오늘은 아무도 없네!" "날씨가 추워서요?" "무조건 물질하러 나오는 줄 아는교. 방송을 해야 나옵니더. 어촌계에서 전복 같은 종자를 방류해서 어장을 관리하고, 해녀들은 거게 따라서 작업하는 거라요. 요샌 잡을 게 없으니 안 나오지요"

 당사마을엔 60대 초반부터 80대까지, 해녀가 서른 명쯤 산다. 수심 10m 이상의 깊은 물질을 하는 해녀('상군'이라 한다. 중군, 하군으로 갈수록 물질하는 수심이 얕다)도 열댓 명은 된단다. 해녀들을 볼 순 없었으나 언젠가 들어본 해녀 노래가 아물거린다. 울산 북구에는 당사와 어물, 우가, 제전, 정자, 판지, 구유항에 해녀의 집이 있다. 
 그는 물이 새는 배를 고치고, 어제 잡아서 수조에 둔 물고기를 가져오는 길이었다. 오늘은 날이 차서 고기잡이를 못 나갔다. 날씨가 좋고 바람이 없으면 아침 여섯 시에 나가 점심 전에 돌아온다. 수온이 너무 차다며 그가 손을 비빈다. 날이 추워도 바닷물은 따듯한데 요샌 그렇지가 않다고. 한류가 일찍 내려온 모양이다. 돈벌이로 나가는 게 아니라 놀기 삼아 배를 탄다며 그가 씩 웃는다.

 당사마을 30여 가구가 각자의 어선으로 조업을 한다. 말을 튼 김에, '당사자연산직판장'에서 파는 물고기는 마을 사람들이 잡아다 주는 거냐고 물으니, "고기를 잡아도 저거 식구 먹는 정도밖엔 안 돼요. 포항 쪽에서 가져와요. 예전엔 우리가 괜찮았지. 이젠 고기가 진짜 없어. 40년 넘게 잡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니깐요. 코로나가 오고는 사람도 없고 고기도 없십니더. 기름값도 안 나와요."
 "없어도 으째 그마이 없노?" 오랜 지기인 듯한 이가 투덜대며 가까이 온다. "쫌 잡았나?" "사흘 전에 문어 통발을 쳤는데 낌새도 없네. 먹고살아 볼라 캐도 머가 있아야 말이제, 암것도 없다, 없어." "허참…." 찬바람이 그들의 헛웃음을 방파제 쪽으로 날린다.

서른명 해녀가 사는 당사마을
전국 첫 해상캠핑장 조성 눈길
고향집 닮은 기와인 하얀 등대
보는이 따라 다른 어물동 등대


 밧줄에 묶인 소형 어선들이 물결에 일렁거린다. 좀 전에 만난 이가 그랬듯, 한 어부가 배에 들어찬 물을 퍼내고 있다. 고향집을 닮은 등대가 방파제 끝에 서서 한낮의 뱃길을 가늠 중이다. 단을 받친 돌고래 조각, 연꽃문양 2층 창, 나무문이 기와지붕과 어울린다. 울산지방해양수산청이 2006년에 조형미를 갖춰 새롭게 꾸몄단다. 높이 9.7m의 좌현 표지, 흰 팔각구조물로 한옥 등대로도 불린다. 등대의 출입문을 건 자물통을 똑똑 두드려본다.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 소리만 차갑게 들려온다. 동안거 중인 노스님의 어허, 호령 같은 묵직함으로 돌아앉은 느낌이다. 나무문이 열리면 면벽한 세월이 쏴아 쏟아질 것 같다. 등대 뒤편으로 갔다. 낚시꾼이 찌를 주시하고 있다. 건너편의 이안 방파제에 앉은 갈매기 떼가 바다에 핀 꽃 같다. 너른 바다를 접한 외항의 테트라포드가 등대에서부터 당사해양낚시공원까지 400여m나 이어져 있다. 그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해녀의 집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당사현대차오션캠프'는 한국 최초의 해상 캠프장이다. 해상의 텐트에서 듣는 바다와 하늘은 어떤 리듬일까. 해안로를 5분여 어슬렁거리니 용바위가 나타난다. 당사해양낚시공원은 용바위 입구에서 넘섬까지 200m가 넘는 철교이다. 당사마을의 전설을 배경으로 갯바위에 설치한 용 조형물에 다가갔다.

 '하늘나라에 커다란 뱀과 거북이 살았다. 머리를 쳐든 뱀보다 몸속으로 밀어 넣어 묵묵해 보이는 거북이가 옥황상제의 신임을 얻었다. 둘은 서로 앙숙이라 날마다 다투었고, 결국 땅으로 쫓겨났다. 달라진 건 없었다. 거북이가 두꺼운 등판 속에서 모함과 음모를 꾸몄음이 밝혀졌다. 어느 날 비바람과 천둥이 몰아쳤다. 바위가 둘로 갈라졌다. 뱀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랐고, 마침내 막혔던 길이 다 뚫렸다.'
 꿈에서 한번은 만나고픈 용. 핸드폰에 꼭꼭 눌러 담는다. 망원경으로 넘섬의 낚시꾼들과 바다를 둘러본다. 철교의 끝을 받치고 있는 넘섬이 신이해 보인다. 

당사항 용 조형.
당사항 용바위 앞에 들어선 용 조형물.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파도는 성질이 급해 앞뒤 가리지 않고 설칠 때가 많았다. 느티나무(500년 묵은)집 할매는 구수한 입담으로 마을 사람과 바다생물, 산짐승, 들짐승, 가축에게 인기가 좋았다. 파도는 할매의 얘기를 듣다가도 욱, 성질을 부려서 마을에 자주 피해를 줬다. 뱀의 승천 소식을 들은 날, 덩달아 하늘로 오르겠다며 파도가 큰바람을 몰고 왔다. 마을의 피해가 심각했다. 할매는 파도에게 바위 뒤에서만 재미난 얘기를 듣게 했다. 그때부터 아무리 기운찬 파도도 바위에 걸려 넘어졌다. 파도를 못 넘어오게 한 바위라고 넘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근처에선 참돔이 논다. 우럭도 볼락도, 전갱이와 문어, 성대, 무늬오징어, 풀치, 노래미, 쏨뱅이, 붉바리, 농어, 민어까지 두루 잡힌다. 2013년 준공 이후 해맞이명소로도 유명해졌다. 공원 입구 삼거리에 돌미역을 파는 집이 있다. 한 다발 샀다. 식감이 좋은 당사의 자연산 돌미역은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채취한다. 늦가을에 바닷속 바위에 낀 풀을 깎아내면 자연스럽게 미역이 붙는다고. 

 하얀 등대를 뒤로하고 붉은 등대로 간다. 멀리서 봐도 모양이 남다르다. 어물항방파제등대는 물고기의 모습이다. 항구는 어물(魚物·물고기 무리)항, 마을은 어물(於勿·늘어진 형태의 산)동이다. 마을 서쪽 산세가 완만하게 늘어졌다 하여 오래전에 지어진 이름. 마을 규모가 작아서 항구도 자그마한 이 일대가 어수선하다. 어물항과 당사항엔 지금 '어촌뉴딜(어촌환경개선)300' 사업이 한창이다. 두 마을 일원(37만6,440㎡)을 필수 기반시설을 갖춘 지역 특성화 관광지로 개발한다. 133억여 원을 들여 지난해 7월에 첫 삽을 떴고 올 12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어항시설과 해양공원 정비,건축과 조경공사를 단계별로 조성한다. 어물항 해안숲,용바위 물놀이장도 갖춘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걸맞게300여 어촌·어항의 혁신성장을 도모하는 해양수산부 공모사업이다. 연말이면 확 달라져 있을 두 항의 모습이 궁금하다.

북구 어물동 몽돌해안가 인근 방파제에 들어선 어물항등대.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북구 어물동 몽돌해안가 인근 방파제에 들어선 어물항등대.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어물동 앞바다로 매일 출항하는 어선은 열댓 척, 해녀의 숫자도 비슷하다. 돌미역과 참가자미, 멸치, 전복이 주요 어종이다. 정박한 몇몇 어선이 등대와 어울려, 어항을 나도는 굴착기 소리를 듣고 있다. 물고기등대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2016년 9월에 세워졌다. 어떤 사람은 물고기 모습으로, 어떤 이는 미사일, 또 어떤 개구진 이는 펭귄으로도 본단다. 사물을 보는 눈은 제각각이니까. 방파제는 출입을 못 하게 밧줄로 막아두었다. 그런다고 코앞의 등대를 만져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벌레같이 몸을 웅크려 들어섰다. 방파제는 공사를 막 끝낸 듯 깔끔하다. 들이치는 바닷바람은 되레 상쾌하다. 파도가 들려주는 나만을 위한 세레나데! 해변의 흑자갈이 깔깔거린다. 어물항등대는 구조물 높이 9.4m로 우현 표지다. 방파제가 높아 당사항등대보다 우뚝해 보인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촉감이 반들반들. 붉은 표면 여기저기가 긁혀 있다. 소금기를 품은 바닷바람에 무쇠인들 배겨나랴. 당사항에서도 본 낚시공원이 멀찍이서 바다를 가르고 있다. 통통통통… 어선 한 척이 방파제 곁을 지나간다. 나는 가볼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김려원 시인
김려원 시인 

 등대를 만나고 나오니 털북숭이 강아지가 왈왈거린다. '당사·어물항 어촌뉴딜300 공통사업' 컨테이너 건물을 수호하는 경비견인가 보다. 사무실 직원이 나오더니, 예뻐해 달라는 시그널이라고 한다. 손을 둥글게 거머쥐고 손등을 내밀었다. 왈왈이가 봄꽃 같은 코끝을 갖다 댄다. 고개를 드니 중천을 지난 태양이 물고기등대 꼭대기에 꽃으로 피어 있다. "북실이야, 연말에 또 올게. 북실이도 꽃처럼 잘 자라거라아."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드니 손에다 대고 왈왈. 꽃 같은 말을 해줘도 왈왈.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차 뒤꽁무니를 따라오며 왈왈. 눈부신 햇살꽃을 쪼그만 꼬리로 찔러대며 왈왈왈. 당사항의 어부는 우럭 한 마리 지글지글 구워 점심상에 얹었을 테지. 흰쌀밥숟갈에 놓였을 우럭살 내음이 어물항 물결에까지 모락모락 흘러든다.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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