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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이성웅 
 
여기선 구름이 길을 물으면
운문체로 대답해야 한다.
바람이 길을 물으면 
솔바람길로 가리켜야한다  
 
이곳은 묵묵한 곰솔나무가 깨달음이고 소리 없이 붉은 단풍이 열반이다 
말로 업의 탑을 쌓던 인간들은 스스로
소처럼 입마개를 씌우기 시작했다 
태양을 불사르던 코로나도 보다 못해
삭막한 인간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구름의 문장은 좀처럼 대답이 적고
솔바람은 바람을 채용하지 않으려한다
운문사는 바람의 구직난에 
단풍이 다급하게 물들고 있다 
 

서금자 시인

△이성웅: 2006년 울산문학 신인문학상(시) 수상. 시집 '엘 콘도르 파사' '클래식 25시'. 울산문협 시분과장, 시와소금, 중구문학 회원 
 
 젊은 날 운문고개를 넘어 운문사에 간 적이 있었다. 가파르게 올라선 고개, 잎새 사이로 쏟아진 햇살이 구름처럼 느껴져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 사는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구나!' 감탄했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소나무길을 따라가서 만난 운문사, 도량은 티끌 한 점 없이 청아하고 나무들도 참선을 하는 듯 정갈한 자태로 산사는 침묵이 깊었다. 그날 지나온 삶을 관조하며 나를 다듬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하여 나에게 운문사는 세속을 지우는 청아한 여백으로 아직도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시인은 '구름이 길을 물으면 운문체로 답해야 한다고, 바람이 길을 물으면 솔바람길로 가르켜야 한다'고 쓰고 있어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맑고 정갈하다. 하여 첫 연부터 독자를 자연과 하나 되게 하고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곰솔나무의 깨달음, 붉은 단풍의 열반을 만나게 된다고, 그리고는 운문사는 바람의 구직난에 단풍이 다급하게 물들고 있다'로 쓰고 있어 자연을 예리하게 읽는 시인의 눈을 만나게 된다. 그 속에 내재된 삶의 의미를 찾아내어 전하는 은유가 경이롭다.
 
 이어 시인은 코로나에 힘든 세상을 운문(雲門)의 기운으로 이 시대의 아픈 부분을 부드러운 능청으로 풍자하고 있다. 하여 독자들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시를 따라가다 보면 운문사의 기운으로 코로나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른 새벽 여승의 찬불가가 울렁울렁 새벽 공기를 깨워 운문사를 넘어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듯 한 느낌, 그 기운으로 팍팍한 삶의 걸음에 한 가닥 희망의 끈 같은 것이 보이는 듯 하다. 
 
 이렇게 운문사에 젖다 보면 참 오랜 세월, 입마개를 씌우고 살아야 하는 우리, 운문을 넘듯 코로나의 고개를 넘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게 한다. 구름문장이 운문체로 친절하게 대답해 줄 것 같은, 솔바람이 넉넉한 인심을 베풀어 솔바람길로 가리켜 줄 것 같은. 서금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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