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는 3곳 사찰에 있던 영험한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을 일컬어 삼소관음(三所觀音)이라 불렀다. 그 중 하나가 선덕여왕릉이 있는 경주 배반동 낭산(狼山)의 중생사(衆生寺)이다. 지금은 절터만 남았고 사찰에 있던 관음보살상에 대한 여러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설화들 중 첫번째가 낭산 중생사의 관세음보살상을 만든 화공의 이야기이다. 옛날 중국의 한 황제가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을 무척 아꼈는데 어느날 솜씨가 뛰어난 화공(畫工)을 불러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정성스레 여인의 그림을 마무리 하던 화공이 그만 붓을 떨어뜨려 그림 속 배꼽에 붉은 점을 찍고 만다. 이 그림을 보게 된 황제는 제 여인 속살에 있던 배꼽 점을 그린 것을 의심하며 화공을 옥에 가두고 벌하려 하자 승상이 만류하며 화공을 용서하기를 간청한다.
황제는 자신의 꿈에 본 사람의 형상을 그릴수 있다면 용서하겠다고 답하자 화공이 붓을 들더니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의 상을 그려 보이니 황제는 놀라 그제서야 그를 용서했다. 이후 화공은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내려와 신라에 망명해 살았는데 서라벌 낭산의 중생사에 관음보살석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화공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사자성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주인공 장승요(張僧繇)라는 설이 있다. 그는 양(梁)나라 초대 황제 양무제 때 궁중 화공으로 여러 왕들의 초상화와 사찰에 이름난 불화를 그렸다.
화공 장승요가 남경(南京, 금릉) 안락사(安樂寺)의 담에 네마리의 용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용의 눈만 그리지 않고 화업(畵業)을 멈추자 사람들이 그림을 완성하기를 재촉한다. 주저하던 장승요가 다시 붓을 들어 두마리의 용의 눈을 그려 넣자 용들이 그만 하늘로 날아 가버렸다고 한다. 이후로도 장승요는 신묘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가 신라로 귀화해 중생사에서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석상을 세웠다. 후에 이 보살석상은 도움이 간절하거나 애절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 자비를 베푸는 신비스런 일들을 펼쳐 설화로 남은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보살 신앙 중 관음보살 신앙이 두터운 것도 이런 사연들과 무관치 않으리라 본다.
일제강점기 때 중생사 관음보살상의 불상 머리가 발견돼 옮겨진 중생사의 관음보살석상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북쪽 뜰 양지 바른 곳에 세워져 있는데 여신상과 같이 도툼하면서도 유려한 조각선이 인상적이다.
장창호 작가는 첫번째 설화에 이어 고려 성종때 시무 28조를 올린 최승로의 탄생 설화와 까막눈 주지승 점숭의 설화 등 중생사의 관세음보살상의 신비스런 설화를 소리 연기로 펼치고 있다. 소리 연기 : 장창호 극작가, 정리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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