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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급하다
 
송은숙
 
사각형 돌들을 박아 만든 주차장
돌과 돌 사이마다 풀이
잔디며 둑새풀이며 마디풀 같은 것이 빼곡하다
살고자 하는 것들 저리 허공 휘저어 그어 놓은 눈금
초록 분필로 그린 모눈종이 같다
빈틈없이 급급하다
땅을 고르고 돌을 놓을 때 어느 싹은
온몸 노랗게 되도록 벽을 긁다가
색을 거두고, 줄기를 거두고
한 점으로 오그라들어 깊이 단단해졌다
빛의 기억을 품고 지그시 어둠을 견뎠다
종일 내린 봄비가 햇살처럼 흘러넘칠 때
기억은 풍선처럼 부풀어
옆으로 옆으로 먼 길을 돌아 터져 나온다
돌과 돌 사이는 빈틈없이 급급하다
 
△송은숙: 2004년 '시사사'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돌 속의 물고기' '얼음의 역사' '만 개의 손을 흔든다', 산문집 '골목은 둥글다'를 썼다.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이 시는 '급급하다'라는 말의 긍정성을 풍경으로써 잘 살려내고 있다. 시에서 나오는 잔디와 둑새풀, 마디풀에게는 급급하다 외에 다른 어떤 선택도 없었을 것이다. 살고자 하는 염원 하나로 무거운 돌덩이 아래를 기를 쓰고 견뎌 온 풀들. 시인은 그들의 아픈 시간을 공감하며 동시에 '급급하다'는 말이 걸어온 외롭고 간절한 길을 이 시로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나는 언젠가 첫돌도 안 된 아이가 창고에 갇힌 상황에서 그 엄마가 보여준 초능력적인 힘을 본 적이 있다. 장정 두 명이 달려들어도 열리지 않던 문이었다. 119대원은 아직 오지 않고 아이는 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모두가 방법을 찾느라 제정신이 아닌 위태로운 상황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고리를 놓지 않고 기를 쓰고 있던 엄마의 손에 의해 거짓말처럼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엄마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급급하다는 말의 힘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쏟아 다른 일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은 말한다. 먹고 살기에만 급급하다, 변명하기에만 급급하다 등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닌가. 나도 지금 시간 안에 원고를 쓰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시인은 어떤 말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하고 지금까지 그 말이 머물던 좁은 공간에서 말의 날개를 달아주어 다른 쪽 세상을 만들어 열어 보이기도 한다. 이 시가 그렇다. 급급하다는 말에 자연스레 따라다니던 부정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눈을 돌리게 하여 시야를 넓혀준다. 긍정 쪽으로 바라보니 그 말이 아니면 통과할 수 없었던 위태로운 절벽이나 그 말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던 캄캄한 일들이 참으로 많다. 어쩌면 생의 모든 길이 급급하다는 말의 징검다리를 한 발 한 발 디디며 건너가야 하는 험난한 강물인지도 모르겠다.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도로에 갓 나온 운전자도 그렇고 다시 취준생의 길로 들어선 딸아이의 책상도 그렇다. 무엇보다 마스크 속에서 세 해째 갇혀 바깥으로 나갈 길을 찾는 우리의 숨소리도 얼마나 급급한가.

 여기저기서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톡톡 사진으로 온다. 두 주 전 찾았던 섬진강의 매화는 탱글탱글한 꽃망울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며 위태로워 보였다. 바람이 몹시 부는 이월 초입에 보는 고향의 매화는 이보다 더 간절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해마다 꽃은 늘 그렇게 급급한 길을 걸어와 봄 쪽으로 길을 터 주고 있다. 머지않아 산과 들에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그 빛으로 강물까지 환해질 것이다. 고향으로 향하는 내 서러운 마음 또한 얼마나 급급해질까 생각하는 새벽, 무언가의 기척이 들리는 듯 귀가 예민해진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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