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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향 시인
심수향 시인

요즘 자주 소용돌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어떤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불교에 무상(無常)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항상 하는 것은 없다' 즉 변한다는 뜻이란다. 모든 존재는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주이멸 성주괴공 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노랗게 싹 튼 무를 잘라 접시에 놓고 물을 주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한 나절 지나면서부터 무 싹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수십 개 망울을 맺고 보라색 꽃을 피우고 꽃잎을 떨구고…이 무꽃은 곱고 설레지만, 요즘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있고, 때론 마음속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도 있다.

코로나가 세상을 강타하고 세 번째 봄이다. 하루 17만 명 넘게 감염자가 나오다 보니 감염매개인 사람은 서로 피해야 사는 세상이 되었다. 밥 한번 먹자는 인사말도 선뜻 꺼내기 쉽지 않은 시대다. 그러니 식구끼리도 지난 설에는 서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세배 차 전화 드리면 두 노인 내외분만 차례를 지냈다는 집이 대다수였다. 감염을 피하기 위한 최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마음속엔 싸한 뭔가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이런 때 세월은 잠시 쉬어가도 좋으련만 쉼 없고, 노인들 몸은 자고나면 달라지니 불안감과 섭섭한 마음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코로나 감염을 염려해서 명절 때 가족과의 만남도 지양하고 납골당과 공원묘지 참배도 막았다. 이것이 단초였는지 며느리들의 반란이 먼저였는지 모르나, 차례에 대한 뜻을 다시 찾기 시작하는 붐이 일고 있다. 차례는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 그것만 갖추면 된다는 뜻으로 재해석 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코로나 기간에 참석 인원 수 제한으로 혼례와 상례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작은 결혼식이 그렇고, 삼일 안에 모든 장례 행사를 끝내는 제도가 정착 되고 있다. 이 와중에 3일도 길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변화는 차례뿐 아니라 제례에도 분다. 제사를 정성껏 모시는 가문에서도 살짝살짝 논의 되고 있다 들었다. 합제는 상식이 되고, 이조차 주중에 드는 날에는 객지에 사는 자손들은 휴가를 내고 참석해야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행사 때 여자들은 수고하고, 남자들은 집행만 하는 구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조상에 대해 직장까지 쉬며 힘들게 음식준비 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 한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차례와 제례에서 오는 변화는 코로나가 발단이 아니라 묵은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과 양성평등 사상의 충돌 쪽이 더 가까워보인다. 

물론 60년대 말 가정의례준칙이 선포된 후 관혼상제에서 허례허식이 간소화 된 면은 있었으나, 세월도 많이 흘렀고, 인식에도 차이가 있으니 관혼상제 간소화 논의는 순리로 보인다.

이즈음 집안 행사 때 집에서 마련하는 음식을 전문으로 만들어 택배까지 해 주는 사업이 늘고 있다. 가까운 지인이 설 지나고 집안에 행사가 있었단다. 일이 바빠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전문점에서 전과 생선을 사보곤 굉장히 매력적이었다고 고백한다. 힘들지만 자부심 가지고 해왔던 일인데, 급해서 한 번 사본 음식이 깔끔하고 맛도 있다면 꼭 내가 수고할 필요가 있나? 하는 갈등이 오더라 한다.

이것이 변화다. 가정 행사의 변화에 여성들이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어떤 부분에서는 당돌해 보일 정도로 앞서 보여 오히려 역차별은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은 뛰어들 생각도 나무랄 생각도 없다. 다만 음식 부분에서는 내가 마련할 상황이 못 될 때 믿을 만한 구석이 생겨 내심 반갑다. 

나를 비롯한 70대 이후 세대들이 떠난 후쯤엔 제사니 차례니 명절 증후군이니 하는 말은 역사서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허례라고 생각하는 것, 허식이라고 생각하는 그 속에 꼭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와 가족의 의미와 만남의 진정한 뜻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가야 할 때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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