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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추운 계절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소식을 알려주는 3월 햇살과 꽃향기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창문 너머 산수유가 노랗게 작은 입들을 달싹이며 깨어나고 우윳빛 하얀 매화가 눈을 뜹니다. 움츠려있던 어깨가 조금씩 펴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습기를 가득 머금고 흐릿했던 마음도 조금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3월과 봄은 시작하는 느낌이라 좋은 것 같습니다. 열병이라도 앓듯 새로이 찾아오는 봄이면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은데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시작할지 몰라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사춘기처럼 가끔 힘들 때 꺼내어 읽어보는 시집이 있습니다. 미열이 날 때 먹는 해열제처럼 저에게는 그런 책입니다.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삶을 살았던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시집을 읽어 봅니다. 햇살처럼 꽃향기처럼 위안이 됩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음 짓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다면 가서 볏짐을 날라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이 있다면 의미 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운 여름이면 걱정하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 불려도, 칭찬에도 미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박해경 아동문학가
박해경 아동문학가

시집 끝부분에 미야자와 겐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박한 삶, 타인을 위한 삶을 노래했던 겐지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결국 1933년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미야자와 겐지 박물관, 기념관 동화마을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겐지 입지는 대단합니다. 아마도 자신을 반성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향하여 평생을 타인을 위해 살아왔던 겐지에 대한 일본인들의 존경심 때문에 일 것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봄이 왔습니다. 혼자 실속을 챙기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욕심도 부리지 않고 소박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시 속에 사는 주인공처럼 진정한 삶을 일깨워 주는 진정 소박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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