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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김동관

촘촘한 어둠이 박혀있는 겨울 저녁

탱자나무 울타리가 세월에 무너졌다

쓰디 쓴 향기에 취한 가장의 어깨로 

날선 덤불을 헤쳐 어둠을 뽑아내면

노랗게 물든 가시 시리도록 차갑다

단단한 생의 끝자락에 고인 눈물 서너 알
 
△김동관: 2018년 나래시조 단시조 대상, 현 울산중구문학회 회장.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가장의 어깨는 항상 무겁다.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야 하고 어둠이 오기 전에 또 다른 아침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탱자 시조는 주어진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려 안간힘 쓰는 우리들의 가장을, 강한 척 버티어 내는 우리들의 아버지를 가슴에 담아보게 한다.
 시인은 '촘촘한 어둠이 박혀있는 겨울 저녁 탱자나무 울타리가 세월에 무너졌다'고 쓰며 탱자나무를 빌려 삶의 행간을 새기고 있다. 여름 동안 호랑나비 애벌레 먹이가 되었던 탱자나무. 이제 할 일을 잃은 탱자나무가 세월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의 어깨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은 그냥 현실을 바라만 보지 않는다. 날선 덤불을 헤쳐 어둠을 뽑아내어 준다. 그리고는 노랗게 물든 가시가 시리도록 차갑다는 것을 알아차림 하고 단단한 생의 끝자락에 고인 눈물 서너 알을 보게 된다. 눈물 서너 알은 탱자의 노란빛을 은유하고 있다. 하여 탱자빛은 따뜻하고픈 무언가를 소망하며 세월을 치유하고 다시 희망을 생각하게 한다. 
 '탱자'는 나에게 유년이 따스한 노랑으로 다가오는 언어다. 길가에 있는 우리 집은 어린 날 가슴에 달았던 내 이름표처럼 나이 많은 탱자나무 한 그루가 사립문 왼쪽을 지키고 있었다. 하여 사람들은 우리 집을 탱자나무 집이라 불러주곤 했다.
 4월 봄기운이 완연하면 잎보다 먼저 별 모양 하얀 꽃이 피어주었다. 꽃에서도 탱자향이 났다. 세 갈레로 된 도톰한 잎이 나면 새똥같이 생긴 회색 징그러운 애벌레가 탱자나무 가시 사이로 기어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차츰 커 가다가 여름이 가까워 지면 내 손가락보다 더 큰 애벌레가 되었다. 그 애벌레는 가시 길도 겁 없이 잘도 기어 다녔다. 애벌레는 네 다섯번의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은 높은 곳에 번데기를 매달고는 호랑나비가 된다는 것을 중학교 생물시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어린 날 나는 탱자나무 꼭대기에서 호랑나비가 자주 날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저 예쁜 호랑나비가 탱자나무에 앉았다가 가시에 찔리면 어쩌나 조바심 했던 게 기억이 남아있다. 그 때는 그 징그러운 애벌레가 화려한 호랑나비가 되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생물시간을 통해 알게 되면서 자연을 또 다른 자연으로 보는 눈이 조금씩 생겨났다. 화려함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화려함이 되기까지는 녹록지 않은 어제가 있었다는 걸. 다섯 살 꼬마에서 열다섯 살 꽃띠가 되어서야 알았으니 한 강산을 넘어 자연의 이치를 조금 알았던 것 같다. 코로나의 세월, 이년 여, 한 강산보다 더 긴 번데기의 세월을 살고있는 우리, 이 봄날에는 우리들 가장의 어깨 위로 호랑나비의 꿈을 꿀 수 있기를 빌어본다.  서금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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