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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태화강 십리대숲 산책길이다.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강에 시선을 준 채 웅숭그리고 서 있다. 무슨 일일까. 뛰어가 보니 꼬물거리는 수만 마리의 숭어 치어들이 강 가장자리를 까맣게 잠식하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치어들이 어디서 몰려온 것일까. 짙은 암회색 생물이 스멀거리는 게 자연의 순환으로 보기에는 섬뜩하다. 이건 이변이다. 이렇게 단정 지은 데는 어젯밤 들은 최재천 교수의 강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환경 강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생물의 대멸종에 다다랐는데, 사람들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삶 안으로 들어온 것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숲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숲에 있어야 할 바이러스 숙주인 야생동물이 인간 삶 안으로 들어와 사람마저 숙주로 삼아 온갖 감염병을 불러왔다." 그런 요지의 강의로 이대로 가다간 생물의 멸종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식상한 얘기다. 늘 들어 왔지만, 코로나19가 오기 이전에는 관심 밖의 얘기였다. 지금은 감이 다르다. 2년 넘어 바이러스가 자유를 앗아가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환경에 조금만 눈을 돌리면 지구 위기에 대한 프로를 접할 수 있다. EBS 기획 프로에서는 '지구의 여섯 번째 대 멸종'이라는 타이틀로 멸종 위기를 불러온 일류의 잘못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밝혀내고 있다. 인류의 대멸종이 머지않았다는 외침은 몇 년 전 환경 파괴를 멈추라는 스웨덴의 소녀 환경운동가 '크레타 툰베리'의 외침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사람들은 지금도 코로나박멸이니, 퇴치라는 용어를 쓰는가 하면 머지않아 원상 회복되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다. 얼추 복원은 될지언정 원상회복은 가당치 않다. 우리는 다만 복원을 위해 시약을 계발하고 보호막을 칠 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2년이 넘는 퇴치 노력에도 잦은 변이를 일으키며 오미크론에 이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감기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소식이 반갑기는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또 어떤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오래전 자연사 박물관에서 지구 멸망의 원인을 묻는 설문 조사를 했었다. 식물 다양성 감소가 1순위로 꼽혔다. 조금만 관심 있게 보면 주위에 친근하던 텃새, 아름답던 여러 종의 나비들이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가는 산과 들, 꽃가루 6~70%를 옮기는 게 벌인데 벌의 개체 수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 먹이 사슬의 고리가 끊어지면 자연계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강이 수만 마리의 숭어 치어들을 품어 주고 있다. 호시절이라면 신기함에 환성이 터져 나올 만도 한데, 검은 물체가 스멀거리는 게 징그럽다는 이들도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현실감을 잃어버린 코로나 상황에 있는 우리 모습과 같아 보인다. 코로나가 들어오기 전 우리도 난개발이 가져다준 편의에 빠져 생각 없이 살지 않았던가.

구경꾼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다수의 사람 들은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태화강 수질이 회복되어 숭어 떼가 몰려온 것이니 길조라며 좋아했고, 환경변화에 민감한 소수의 사람 들은 기이한 현상이라고 보았다. 나 역시 장래를 어두운 쪽으로 보는 부류여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숭어 떼는 태어난 지 1~2년 된 치어로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몸을 키워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과연 저 많은 치어 떼가 무사히 돌아가 제 수명을 다할 수 있을지….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멸망을 앞으로 300년 정도 예상한 적이 있다. 20~30년 정도 앞당겨지리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어찌어찌 살 수 있지만, 후손들은 어찌하는가. 전에 이런 얘기는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피했지만, 이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다. TV에서 부쩍 환경 파괴 현장을 가감 없이 방영하고 있다. 자칭 태화강 지킴이라는 분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예전엔 이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대다수 사람이 희망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지난해 기온이 따뜻했고, 시의 태화강 살리기 정책으로 하수처리를 잘해 수질이 1, 2급수로 개선되었으며, 시민들의 높아진 자연보호 의식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왠지 희망의 싹이 보이는 듯하다. 

최재천 교수 강의의 핵심은 '자연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생共生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그리 생각하니 숭어 때가 몰려온 것이 마치 자연과 인간의 화해의 한 장면 같다. 공생의 실체가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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