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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강우식 
 
고사목이 다된 산수유가 어디서 물이 올랐나
봄의 온 기별은 용케도 귀신처럼 잘 알아서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까)
꽃 피고 열매 맺고 새잎도 돋았다.
늙었어도 할 짓은 다했다.
주책 망령이라고 누가 혀를 차랴.
산수유야 늬가 봐도 늬가 예쁘고 기특하냐.
그래서 몸 가득 꽃으로 치장하고 열매를 달았느냐.
늙은 내가 있는 그대로 너를 보아도
이 봄이 너에게는 마지막으로
꽃을 다는 봄이더라도
죽을 때까지 너무나 곱게 늙어서 고맙구나.

△ 강우식시인 : 1941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66년 '현대문학' 등단. 성균관대학교 시학교수로 정년퇴임. 시집 '사행시초' '사행시초 2' '마추픽추' '바이칼' '백야白夜' '시학교수' 등.
 

박정옥 시인
박정옥 시인

무채색의 계절 끝에 남쪽의 구례에서는 노란 꽃 소식이 온다. 가장 먼저 몸으로 보여주는 봄의 전령이다. 동백이 질 때 매화가 피고 그리고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진달래, 개나리, 벚꽃, 철쭉의 순으로 봄을 피우는데 작년에는 모든 봄꽃들이 순서도 없이 동시다발로 피어서 코로나에 놀란 가슴이 철렁했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오래전에 산수유를 보러 구례에 간 적이 있었다. 낮은 돌담을 끼고 낮으막한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무채색의 계절에 피어나는 노란 불씨들이 뭔가를 그려내고 있는 중인데 노란불꽃 사이로 꺼먼 고목들이 은둔자처럼 있었다는 것. 피돌기도 없고 감정의 동요도 없이 묵묵한, 그저 마을의 일부인 은둔자들을 만나고 온 기분이었다. 마음이 캄캄해질 때 찾아갈 수 있어 안심이 되는 그런 것이라 적었다.

 누가 그랬다. 하늘에는 측량하기 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불행과 복이 있다고 했다. 슈퍼전파력을 가진 오미크론코로나는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가벼운 감기처럼 지나갔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서 만나는 옐로 코로나, 가까이서 보면 산수유는 왕관처럼 생겼다. 올 봄은 왕관을 쓰고 있는 은둔자들이 봄을 불러오고 사람들은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앞산은 매일 하루가 다르게 파스텔색의 융단을 짜기 시작하였으니. 

 '고사목이 다 된 산수유가 온 봄의 기별은 용케도 귀신처럼 잘 알아서' 시인이 생각하는 오래 살아온 세월이란 그런 것이다. 세상이치에 밝은 은둔자가 되어 주책 망령으로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파파 할머니가 된들 서러울 것은 없겠다. 저렇듯 예뻐하는 시인의 마음이 열렸으니 꽃말처럼 '영원불멸의 사랑'을 얻을진저.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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