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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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신문
  • 2022.04.0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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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정경아 수필가
정경아 수필가
정경아 수필가

개화기는 점점 빨라진다. 근린공원에는 자그마한 꽃을 여러 다발로 만들어 몸에 틔운 벚꽃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꿀벌이 등장할 차례다. 동료 꿀벌들에게 8자 춤과 진동 춤으로 신호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풍부한 꽃꿀이 있는 곳을 향해 함께 몰려가는 흥겨운 몸짓이 보이지 않는다. 꿀벌들은 어디로 갔을까? 

시끌벅적한 노점상에서 먹거리를 팔며 나들이객을 붙잡던 꽃 축제도 사라졌다. 봄은 병색이 짙은 환자처럼 핏기가 가셨다. 마른 기침이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는다. 세상은 몇 년째 전염병과 사투를 벌였는데도 차도가 없다. 확진 소식은 이전보다 가파르게 돋아났다 아물기를 반복했다.

시골에 계신 작은 할머니는 도시에서 방문한 딸 때문에 확진이 됐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왔지만 이웃 사람들은 할머니 주위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담을 마주한 나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6·25 때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으려 발 위로 돌을 내리쳐 발가락 두 개를 잃었다던, 기와집 뒤편 대나무밭에 토굴을 파 숨어 견뎠다던 할아버지. 가래처럼 잘못 뱉어진 정보를 마치 공습경보로 오해하며 세상의 문을 걸어 잠갔다. 꽃이 필 무렵, 이웃들과 함께 나누던 할아버지 생일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며 자식들도 찾아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팬데믹 속 여러 죽음들이 허망하게 지나갔다. 나의 외할아버지도 남편의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들이 남기려던 마지막 말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장례식장이 딸린 병동에는 전염병만 생기가 넘치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실체가 얼마나 옮겨 다니며 해를 끼칠까 두려웠다. 소독제를 뿌려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빠르게 지웠다. 고인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하고 주춤하던 사이 신속한 의례 절차는 죽음이라는 선명한 두 줄을 받아들이라는 통보로 마무리됐다.

양봉장의 텅 빈 벌통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인간이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꿀벌도 시름을 앓았다. 전국 약 60억 마리의 꿀벌이 실종됐다. 일벌들이 사라지고 벌집에 남은 여왕벌과 애벌레는 먹이를 공급받지 못해 죽고 마는 꿀벌 군집 붕괴 현상이 일어났다.

꿀벌응애류는 벌에게 기생해 약하게 하고 기민하게 병을 옮긴다. 응애는 벌 유충과 애벌레의 체액을 빨아먹음으로써 영양분을 얻는다. 벌 유충의 몸에 뻥 뚫린 상처 구멍은 온갖 세균과 곰팡이, 그리고 바이러스를 불러들인다. 이들이 자라서 성체 벌이 되면 종종 기형이 되거나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불구가 되기 쉬웠다. 

게다가 이상 기후로 인해 개화가 빨라지자 일벌들이 서둘러 꿀을 모으러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기온이 떨어져 결국 벌통에 돌아오지 못했다. 올봄에 발생한 대형 산불은 꿀벌들이 좋아하는 아카시아꽃이 많이 피는 지역을 까맣게 태웠다. 어느 때보다 꿀의 수확량이 떨어지는 흉밀(凶蜜)이 될 것임이 자명하다. 전 세계 주요 농작물은 거의 꿀벌의 수정을 의존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가을에 거둘 결실은 없어질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생태계의 생존도 장담하기 어렵다. 사람도 꿀벌도 위태위태한 봄을 맞고 있다. 꽃비가 내리기 시작하지만 아직 밖은 안전하지 않다. 전염병이 우리 몸에 구멍을 내고 새긴 것은 남을 향한 경계와 두려움이 아닐까. 전염병이 지나간 자리는 아물어도 또 다른 경계와 혐오 그리고 우울의 싹을 틔울지 모른다. 

하지만 부르르 날갯짓을 해 본다. 사람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느꼈던 교감들을 기억하려는 듯이. 눅눅하고 무거운 감정을 떨쳐내고 그리웠던 사람들 사이로 다가가는 비행을 시도한다. 짙은 녹음이 우거지는 5월이면 양봉 농가에서 본격적인 꿀을 수확할 것이다. 아카시아꿀 냄새를 찾아 먼 길을 여행할 꿀벌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꿈을 꾼다. 풍성한 꽃꿀로 꿀벌들의 수가 늘어나 끊어졌던 생태 리듬이 되살아났다는 희소식이 곳곳에 뿌려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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