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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태 수필가
임일태 수필가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한 잔을 마셨다가 이틀은 족히 고통을 받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나에게는 소주 두 병과 커피 한 잔 중에 택일을 하라면 나는 기꺼이 소주 두 병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만남에는 으레 커피 한잔합시다. 차라도 한 잔이란 말을 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커피를 두고 하는 말이고, 만남의 장소로 커피숍만큼 좋은 데도 별로 없다. 지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묻지도 않고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런 경우 미리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정 주시고 싶으면 물이나 한잔 달라고 한다. 

커피 한 잔이 물 한 잔으로 바뀌면 커피라는 말조차 처음 들었던 중학교 시절 영어 시간이 생각난다. 같은 한 잔이라도 커피와 물 한 잔은 다르다. 그 차이 때문에 시험문제의 단골이 되곤 했다. 같은 한 잔인데 'a cup of coffee'와 'a glass of water'. 커피는 꼭 도자기 컵에, 물은 꼭 유리컵에 담아 마셔야만 한다는 것이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액체는 바가지에 떠서 마시면 되는 것인데…. 시험에서 답을 다르게 썼을 때는 더욱 커피가 못마땅했다.

나와 커피와의 첫 대면은 1967년 늦가을이었다. 우리 시골동네 사람 대부분이 보지도 못한 것을 우리 할아버지도 아버지 어머니도 보지 못한 커피를 내가 먼저 본 것이었다. 중학교를 졸업 직후 부산역 주변에 있는 그릇 점포에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곳에서 함석을 잘라 물동이와 연통을 만들어 파는 상점으로 주로 텍사스라고 불리는 양공주 촌에 난로를 설치하는 일을 했다. 텍사스는 모든 간판은 영어로 돼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외국인과 노란 머리를 한 여자뿐이었다. 라이온 바라는 곳에 난로를 설치하는 날이었다. 조명이 꺼진 실내에서 본 이상한 그림과 물건들이 촌놈인 나에게는 두렵게만 느껴졌다. 

난로 설치를 막 끝내고 혼자 청소를 하는 나에게 노랑머리의 서울말을 하는 여자가 "너 커피 아니? 먹을 수 있어?" 하면서 구석진 곳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커피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커피는 꼭 컵으로 마셔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응급 결에 꼭 우승컵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긴 밤색 유리병을 받아 들었다.

자취방에 돌아와서 뚜껑을 열고 커피 병을 쏟아보지만, 커피는 나오지 않았다. 액체인지 고체인지는 몰라도 무엇인가 가득 들어 있기는 했다. 커피를 준 그 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릇 점포 주인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녀가 커피를 주면서 주인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고 혼자 몰래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던 터였다. 숟가락으로 긁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작은 칼을 넣어 망치로 두드려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딱딱했다. 며칠을 궁리한 끝에 생각해낸 것이 큰 냄비에 물을 붓고 뚜껑을 연 커피 병을 넣어 푹 끓이는 방법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노는 일요일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노는 일요일 아침, 큰 냄비에 물과 뚜껑 열린 커피 병을 넣고 연탄불에 끓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물이 끓고 물의 색깔이 차츰 진한 밤색으로 우려졌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도 났다. 커피란 서양사람들의 탕약 정도로 생각하며 어머니가 약탕기에 탕약을 끓이는 것처럼 오래오래 끓였다. 흰색으로 변한 병을 건져내고 두어 시간을 더 끓였다. 컵이 없어 대신에 사기로 된 국그릇에 한 그릇 떠다가 마셨다. 역시 좋은 약은 몸에 쓰다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언이란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한 사발을, 또 저녁을 먹고 한 사발을 코를 막고 치를 떨며 마셨다. 단번에 효험이 나타나는지 온몸이 마구 떨렸다. 토할 것 같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하늘이 노랗고 세상은 빙글빙글 돌았다. 그날 밤은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린 것이 커피와 첫 만남의 추억이었다. 

한국에 커피가 처음으로 들어온 19세기 말 고종황제가 즐겨 마시던 '가배차(茶)'가 다름 아닌 커피란다. 1895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있을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맛보았다는 커피. 물론 고종황제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먹기는 했지만 아무튼, 먹어 본 것은 사실이었다. 

아마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커피만 생각하면 'a cup of coffee'가 기억나고 가슴이 울릉 거리고 쓴웃음밖에 나지 않는다. 그때 그 노랑머리 서울 여자는 왜 내게 주었을까? 비록 아끼다가 굳어버리기는 해도 그 당시는 귀하고 비싼 미제 커피를 통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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