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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화물선

신혜경
 
운항 중지 명령을 받은 화물선 한 척 
청춘은 바다에 주고 은발 되어 돌아왔다 
무거운 짐 가득 싣고 망망대해 누비는 동안
한 번도 해로를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바다가 수여한 표창장을 여러 번 받았다
몇 해 전 상갑판 한쪽이 내려앉아 보수했고
지난봄 기관 고장으로 예인선에 끌려오기 전까지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던 우리 집 화물선
평형수 채우고 만재흘수선 점검하던 
예리한 눈빛은 그대로인데 
작은 항구에서 한 달째 정박 중이다 
따스한 햇살 안고 가물가물 졸다가도 
샛바람 부는 날엔 다시 바다가 그리워
삐거덕삐거덕 온몸 뒤튼다
재갈매기 몇 마리 위로처럼 앉았다 날아가자 
아직 항해할 힘 남았다며
쿠르릉, 엔진 소리 드높인다 

△신혜경: 2003년 계간 '문학수첩' 시 부문 신인상 당선. 수주문학상, 울산문학 올해의 작품상, 눈높이아동문학대전 단편동화부문 수상. 시집'해파랑, 길 위의 바다' 외 1권, 장편동화'태극기 목판' 외 1권.
 

김감우 시인
김감우 시인

정년퇴직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입장에서 쓴 시가 아닐까 싶다. 시 속 화자는 작은 항구에 한 달째 정박 중인 화물선을 본다. 퇴임한 지 한 달이 된 주인공의 모습이다. 속도에서 벗어난 배는 젊음을 바다에 다 바친 채 쓸쓸한 은발이 되어 돌아와 있다. 그 화물선에 달콤한 신혼도 실었으리라. 배가 항해하는 동안 잠재운 파도는 한 가장의 짐이면서 동시에 힘이었을 것이다. 그의 항해는 바다의 수평을 지키기 위해 평생 쏟아 낸 땀과 눈물의 길이었을 것이다. 길목마다 버석거리는 소금기만 남아 낡아버린 육신으로 예인선에 이끌려 온 배 한 척.
 아직은 항해할 힘이 남아 있는데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 점검하던 예리한 눈빛 그대로인데 아침에 일어나 닻을 올리고 쿠릉쿠릉 나가야 할 항로는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그의 청춘을 품어 안은 채 더욱 깊어졌을 것인데 그뿐, 바다가 수여한 화려한 표창장도 추진력으로 질주하던 한 시절의 영광도 모두 뒤로한 채 그 배는 이제 따스한 햇살에 가물가물 졸고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가정마다 흔하게 보는 쓸쓸한 우리들의 풍경이다.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취업난에 힘들고 아직은 일 할 수 있는데 더 이상 출근할 직장이 없는 은발의 청춘들. 한 개그맨의 노래처럼 "오늘은 뭐할까?"를 고민해야 되는 막막한 하루가 가고 또 그런 하루가 오고 있다. 해법은 무엇일까? 이 시에 나오는 '만재흘수선(滿載吃水線)'은 배가 사람 또는 화물을 싣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최대한의 흘수를 나타내는 선이라고 한다. 선을 살피는 예리한 눈처럼 우리가 타고 있는 거대한 배의 안전한 해수면 수위를 잘 체크하여 균형을 잃지 않아야만 이 망망대해를 헤칠 수 있을 것인데.
 나는 이 시에 나오는 화자의 시선에서 그 균형감을 발견한다. 우선 참 따뜻하다. 기관 고장으로 예인된 낡은 화물선을 읽어내는 마음에 애정과 연민이 가득하다. 그런 마음이기에 '샛바람 부는 날엔 다시 바다가 그리워 삐거덕삐거덕 온몸 뒤트'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쓸쓸한 상황이 아늑한 봄날 같다. 머지않아 낡은 이 배는 잔잔한 동풍 쪽으로 다시 항해할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이 든다.  김감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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