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멋져요"
"나도 멋져요"
  • 윤경화
  • 2022.04.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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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화 수필가
윤경화 수필가
윤경화 수필가

자신이 멋지다는 생각을 가끔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자존감 지수가 사정없이 올라가는 날이다. 그런 날은 나무와 꽃 색이 다르게 보인다. 일상이 투명하고 경쾌하게 다가와 그냥 신이 난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근사한 소우주로 보여 경배하고 싶다.
 며칠 전 오랜만에 단골손님이 가게에 들렀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 워킹맘이라 늘 바쁜 사람이라는 게 말하지 않아도 훤히 보여 그녀가 오면 내가 먼저 서두르게 된다. 올해 막내까지 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더니 모처럼 여유가 있는지 이번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청바지와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에서 오히려 단단해진 자신감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진정성 가득한 그녀의 말과 행동은 소박한 겉모습과 조화를 이루어 멋스러웠다. 어느새 나는 그런 분위기에 동화되어 함께 즐거웠다.

 그녀는 삼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쯤 찾아오는 고객이다. 네덜란드 사람으로 한국의 청년과 결혼하면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가 셋인데 둘은 손을 잡고, 막내는 처네를 한국식으로 둘러서 업고 우리 매장을 찾던 모습이 한국의 여느 엄마와 같아 정감이 갔다. 그뿐만 아니라 검소한 소비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으며, 절제된 그녀의 언행은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밝은 달인 듯 풍기는 이미지에서 고상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속내를 조금 보이면 그것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내가 네덜란드 댁에게 자리를 깔아준 셈이긴 하지만 오늘 그녀도 무척 달떠 있었다. 평소 마음속에 궁금한 게 있었던지 나는 무심결에 호구조사를 시작하고 말았다. "남편은 무슨 일을 하세요?" 아뿔싸!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서 어쩌려고? 왜 그것이 궁금한 건가? 짧은 시간이지만 민망한 마음에 스스로 자책하고 있는데 그녀는 함박꽃처럼 웃으며 자신은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남편은 외국기업의 한국 책임자라고 했다. 한술 더 떠 "우리 남편 멋져요.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 참 좋아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무리 한마디가 더 있었다. 
 "나도 멋져요."

 내 기억 속에 자신을 멋지다고 말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환한 표정으로 스스로 멋지다니. 그녀가 말하는 멋의 의미가 궁금하다. 사실 멋이라는 개념은 내용이 단일한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불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멋은 비교적 광범위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예술품이나 사람, 자연이나 조형물, 일의 성과나 기타 생명체의 특이점 등에서 생각보다 폭넓게 접한다. 다소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겠으나 품격을 갖춘 어느 대상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동의 정서가 담긴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떤 면이 멋지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흔하지 않은 멋진 사람으로 보였다. 나 역시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은 행복지수가 살짝 올라가는 듯하지만 이내 마음속 허풍은 사라지고 만다. 스스로 멋지다고 여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받는 외형적인 인상은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여인의 초상을 보는 듯하다. 식물로는 이른 봄 깊은 산 반그늘에서 만난 매혹적인 얼레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의 해석이나 식물의 꽃말과는 무관하게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시원하고, 수수한 이미지 속에 은근한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네덜란드에서 성장해 한국문화 속에서 제2의 인생을 꽃피우고 열매를 다는 과정의 삶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나도 멋진 사람'이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선이 아닐까 싶다. 겉과는 다르게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멋질 수 있는 삶의 여정은 진실한 일상이 담보되어야 하기에 더욱 그녀의 시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진심을 담은 삶이란 당사자만이 아는 일로 때로는 양심이란 놈이 주는 곁 눈길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그것을 누린다면 그녀 말처럼 '나도 멋진 사람'의 반열에 당당히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부럽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현재 그녀의 입장은 마흔 즘의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을 때다. 일과 육아,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욕구 등이 그렇다. 이 시기는 성취와 기쁨 못지않게 고단함과 갈급증이 혼재되어 심리적 부담도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이 솔직하고 담백해 보였다.부정적인 감정을 다음으로 끌고 다니지 않는 듯 매사가 명쾌하다. 일상의 행간에 무겁고 습기가 있는 감정은 부지런히 치움으로써 자신을 고귀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이 멋지다는 말을 타인에게 해본 적이 없다. 가끔 어렵게 작은 목표를 성취했을 때도 혼자 마음속으로 '나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정도였다. 그 정도로도 잠시 나는 우쭐이가 된다. 멋이란 한 사람의 내외면의 살이가 끊임없는 발효의 시간을 거쳐서 향기를 발산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네덜란드 댁이 부럽고 예사로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 멋스러운 것이 널려 있어도 멋진 사람이 아니라면 진정한 멋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멋져요"를 생략했다면 그녀의 남편마저 멋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녀처럼 멋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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