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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
송은숙 시인

오랫동안 변두리에 살았다. 우리 동네는 원래 군이었다가 내가 태어날 때쯤 시에 편입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시의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다.

변두리란 어느 지역의 외곽지대를 말한다. 가장자리이고, 변방이며, 주변지역, 경계지역이다. 변두리, 하면 흔히 허름함, 무언가 떠밀린 삶, 가파른 언덕과 골목집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 내가 방학 때 머물던 서울 이모네도 변두리에 있었는데, 겨울이면 연탄재를 뿌렸던 골목과 시내의 불빛이 아득히 보이던 언덕 꼭대기, 종점으로 향하는 기차가 지나가는 굴다리가 기억난다. 하지만 변두리도 도시 변두리, 시골 변두리가 있고 변두리마다 독특한 변두리 문화가 있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였던 우리 동네도 그 나름의 독특함이 있었다.

변두리로서 우리 동네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버스 종점이 있다는 것이다. 종점에서 타고 내리는 것은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무엇보다 앉아 갈 수 있고, 내릴 때도 중간에서 내릴 때와는 달리 긴장이 풀려서 꾸벅꾸벅 졸면서 오게 된다. 종점에 도착하면 기사 아저씨가 다 왔어요, 하고 큰 소리로 깨워준다. 그러면 승객들은 화들짝 놀라며 짐을 챙기고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다. 아스팔트 바닥은 오랜 시간 버스 바퀴에 파여 울퉁불퉁했고, 비라도 올라치면 군데군데 웅덩이가 생겨 차에서 흐른 기름으로 무지갯빛 띠를 이룬다. 그래서 비가 올 때 버스에서 내리려면 한껏 발을 떼어 웅덩이를 밟지 않아야 한다. 종점 근처에는 포장마차가 있어서 저녁이면 카바이드 불빛 아래 두어 명의 손님들이 앉아 두런거리고, 버스에서 내리면 집에 가는 대신 포장마차에 먼저 들르는 어른들도 많았다. 

왠지 축축하고 눅눅한 분위기지만 종점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여섯 해 동안 나를 지지해주던 중요한 공간이다.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쯤이면 아버지가 항상 마중을 나와서 종점 옆의 가로등 아래 서 계셨다. 그리고 내 가방을 받아 들고 말없이 먼저 걸어가셨다. 종점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쓸쓸한 굽은 등과 침침한 가로등 빛을 떠올린다. 그 가로등은 추억의 힘으로 딸칵, 켜지는 가로등인 셈이다. 

변두리엔 공장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동네에도 당면 공장과 마대 공장, 피대 공장이 있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녀들의 첫 직장으로, 돈벌이가 아쉬운 아주머니들의 일터로 이용되었다. 당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당면은 빨랫줄에 빨래를 널 듯, 덕장에서 명태를 말리듯 넓은 공터에 줄을 걸고 말렸다. 당면은 먹거리지만 딱딱하고 별맛이 없어서 손을 안 타기 때문에 넓은 공터에서 마음껏 말라 갔다. 가을 햇살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당면을 보면 파란 하늘 아래 가득 널린 흰옷처럼 어떤 막연한 서글픈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마대와 피대 공장. 마대는 비닐로 짠 가마니 같은 거고, 피대는 기계 바퀴에 걸어 동력을 전달하는 두텁게 짠 벨트다. 이 공장은 너무 시끄러워서 공장 안에서 알아듣게 말을 하려면 마구 소리를 질러야 했다. 천장은 높고 절걱거리며 돌아가는 기계는 위압적이었다. 공장 바깥에서도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서 변두리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공장이다. 대충 지은 듯한 시멘트 건물이 을씨년스럽지만 나름 동네 사람들의 일터로 요긴한 구실을 했다. 이런 소규모 가내 공장들이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우리 동네는 시골과 인접한 도시 변두리라 공장도 있었지만 논이나 밭이 더 많았다. 가을이면 참새를 쫓고 타작이 끝난 뒤 이삭을 주우며 아이들과 몰려다녔다. 도심으로 흘러가는 냇물도 여기서는 맑은 편이라 여름엔 버들치와 민물새우를 잡으며 지냈다. 동네 뒷산에 골프장이 들어선 것도 변두리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골프장은 마을 주민들하고는 상관없이 지어졌고, 오히려 갓길에 늘어선 차들 때문에 괜히 우리를 주눅 들게 했지만 골프장 근처에 살던 내 친구 한 명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골프장에 취직하기도 했다. 아, 우리 동네는 아니지만 내를 건너면 고압선이 위협하듯 서 있는 커다란 변전소도 있다. 모두 도심이 아니라 가능한 시설일 것이다.

버스 종점이나 소규모 공장, 명색이 도시면서도 논밭이 펼쳐져 있어 시골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변두리의 모습이다. 아마 도시와 시골의 인접 지역이라 그렇지 도시와 도시 사이의 변두리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변두리다 보니 변화의 물결은 가장 늦게 찾아왔지만 한번 물꼬가 터지니 변화는 돌이킬 수 없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공장은 이사를 가거나 문을 닫고 논밭에는 아파트나 빌라가 들어섰다. 변두리의 모습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버스 종점인데, 이것도 포장마차는 사라지고 바닥이 시멘트로 새로 발라져 산뜻하게 바뀌었다. 다리를 건너면 행정구역이 바뀌는데 그곳에도 계속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들이다. 그러니까 이젠 어디가 도심이고 변두리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아파트가 끝나는 곳에 변두리가 시작될까.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팽창하려는 욕망을 지닌 듯 변두리를 삼키며 날로 커지고, 변두리는 변두리의 변두리가 되어 자꾸 밀려간다. 그저 내 기억 속의 변두리만, 이제 건물들에 둘러싸여 팻말과 함께 서 있는 노거수처럼 여태껏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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