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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수필가
오병훈 수필가

아라비아의 옛 지리서에는 신라를 황금의 땅이라 했다. 알려진 것처럼 신라의 금관만 해도 얼마나 화려한가. 나뭇가지 모양의 관식을 앞에 꽂고 새 날개꼴을 한 관식 두 개는 양쪽에 꽂아 비스듬히 뒤로 쓸어 넘겼다. 가지에는 수많은 황금 행엽과 곡옥을 달아 조금만 움직인다 해도 반짝이도록 했으니 옛 신라인들의 놀라운 금속공예술을 엿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반지며 태환식 귀고리, 금잔, 요대 같은 황금 유물의 정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백제는 또 어떤가. 무령왕릉에서 출토한 왕과 왕비의 관식은 너무나 화려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불꽃 문양이며 연화 보상문이요 인동당초문인가 하면 활짝 핀 모란으로 보인다. 임금의 관에 꽂았을 것으로 보는 이 관식이야말로 백제문화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마치 신라의 출자 모양 금관이 우리를 놀라게 하듯 백제의 금관 또한 시대를 초월해 걸작 공예품으로 미술사에 길이 남을 만하다.

과연 우리나라는 황금의 땅이었을까. 백제의 제30대 무왕은 젊을 때 이름이 마캐는 총각이었다. 그 마를 가지고 서라벌로 가서 노래를 지어 퍼뜨렸다. 선화공주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선화공주는 마동이를 숨겨두고 밤마다 몰래 만나네'라는 유행가를 불렀다. 그 노래는 오래지 않아 서라벌에 퍼져 진평왕의 귀에도 들리게 됐다. 왕은 공주가 부정하다고 해 궁에서 내쫓았다. 왕후는 떠나는 공주를 불쌍하게 여겨 황금을 줘 보냈다. 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간 서동은 신라의 진평왕에게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했다. 선화공주는 황금을 내놓으며 이 금으로 부왕의 마음을 얻으라고 했다. 그러자 서동은 금이라면 금오산에 산처럼 많이 쌓아 뒀다며 모두 신라로 보내 사위로 인정받았다. 훗날 신라의 힘을 빌려 백제왕이 될 수 있었다.

과연 서동은 마를 캐는 총각이었을까. 그는 어쩌면 금을 캐는 광부였는지도 모른다. 남에게 도둑맞을까 해 마를 캐기 위해 산을 오른다고 자신의 부를 숨겨왔는지 모른다. 그 황금을 바탕으로 해 신분이 낮은 사람이 세력을 키우고 끝내 백제의 왕이 될 수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건국 자금이 넉넉해야 튼튼한 나라를 세울 수 있으리라.

일제강점기만 해도 한반도에는 수백 개의 크고 작은 금광이 있었다. 수많은 일본 경제인들이 금을 찾아 조선으로 건너왔다. 그중에는 크게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 조선인 재벌 중에서도 금광업에 손을 대 빈털터리가 됐는가 하면 큰돈을 번 사업가도 있었다. 금광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다. 그러나 한번 광맥을 찾아내면 크게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일인들도 서양 기술자로부터 채굴과정을 배우는 시대였다. 광맥에서 순금 덩어리가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때 손대지 말라고 '노 터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일인들은 발음을 잘하지 못해 노다지라고 했다. 좋은 금맥을 발견하면 노다지를 만났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많이 쏟아지던 금광을 왜 갑자기 폐쇄했을까. 그들이 조선에서 성황리에 금광업을 펼쳐왔으나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확산시키면서 많은 전쟁 물자를 필요로 하게 됐다. 특히 쇠와 구리는 전쟁에서 즉시 사용해야 하는 전쟁 무기였으며 실탄이 되는 중요한 자재였다. 잘 나가는 금광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채굴 장비를 모두 철과 동광산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 광복이 될 때까지 차례로 갱구를 닫게 됐다.

정부 수립 후 금광개발에 뜻을 둔 광산업자도 많았으나 그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폐쇄돼 있던 광구를 복구하는데 너무 많은 자금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버려둔 갱에서 작업을 재개하려면 우선 물을 퍼내고 안전시설을 다시 설치해야 한다. 조명시설을 하고 갱내 철로를 까는 등 많은 시설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일부 광산업자들은 석탄 개발이나 석재 광산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최근 한국의 금광에 관심을 보이는 세계적 기업들이 있다. 한 홍콩기업은 경남 거창 지리산 자락에서 금광사업을 위해 안정성 조사에 들어갔다. 한국의 구봉과 거창 두 곳의 금 매장량만 해도 수백만 온스에 이르는 것을 알려져 있다. 채굴 가능한 금만 해도 28톤, 우리 돈으로 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엄청난 황금이 아직 우리나라 전역에 묻혀 있으니 자본가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금은 재벌만 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커다란 나무 쟁반 하나만 가지고 가까운 시내로 나가 모래를 일어 사금을 찾아낼 수 있다. 혹시 아는가 노다지가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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