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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수필가·한국시니어브리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우리나라는 '배달의 천국'이라는 말이 있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휴대폰으로 주문을 해도 치킨이며 중국집 메뉴가 배달 될 정도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비대면이라는 명분으로 배달문화가 더 급속히 커졌다. 
 
딸내미 집에서 집들이가 있었다. 식탁을 장식한 해물탕이며 생선회, 샐러드, 치킨 등 모두가 배달음식이라고 했다. 전화만 하면 배달해주니 편리한 세상이라고 했다. 
 
친구 중 한명은 치킨집을 운영했었다. 대부분 배달 주문이다. 배달하는 사람 구하기가 어렵자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다가 여러 번 교통사고를 겪었다. 오토바이는 속도도 나면서 자기 보호가 허술해서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가 나기 쉬운 운송수단이라고 했다. 차량과의 충돌사고도 많지만, 특히 비오는 날이나 눈오는 날은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사고가 많이 난다. 결국 치킨집을 집어 치운 이유도 사고 후유증 때문이었다. 
 
이렇게 배달문화가 폭발적으로 커져도 문제가 없을까? 집집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넘쳐난다. 거리는 온통 오토바이 배달하는 사람들이다. 골목길도 신호등이 없어 오토바이들이 많이 다닌다. 오토바이는 차로로만 다녀야 하지만, 인도에도 다니고 횡단보도에는 사람들과 같이 건너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교통사고도 많이 난다. 
 
아예 배달족으로 직업을 삼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나이든 사람들도 투잡으로 배달을 한단다. 그래도 오토바이 배달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해 배달료가 오른단다. 
 
요즘은 일을 안 해도 주는 지원금 때문에 굳이 일을 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도 늘었다고 한다. 이건 국가적으로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산적이지도 않다. 한창 젊을 때 좋은 일자리를 가져 나이가 들면서 자리를 굳혀야 하는데 배달직은 임시직으로 끝나는 직업이다. 그렇게 살아서 언제 재산을 축적하고 노후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인가 걱정스럽다. 
 
택시 기사들이 대거 이런 배달 족으로 방향을 돌려 택시잡기가 어렵다는 기사도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가니 배달하던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져 고민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1만2,000원짜리 수제버거를 파는 음식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중 배달에 들어가는 돈이 5,000원 가량이란다. 팔면 팔수록 손해보는 구조라 했다. 손님들이 와서 포장해 가면 가장 좋단다.   
 
배달은 어찌 보면 양반 문화다. 가만히 앉아서 이것 가져 와라 저것 가져 와라 하면 음식점들은 열심히 포장해서 오토바이를 불러 배달해준다. 갖다 주면 돈만 내면 되는 것이다. 배달이 좀 늦으면 갑질도 한다. 어떤 아파트 단지는 오토바이 출입 금지 내지는 주문자를 만나러 가는데도 겹겹이 방어막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다. 
 
택배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배달 음식은 발품을 좀 팔아서 직접 가게에 가서 사면 이런 배달문화가 좀 진정될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냄비라도 가져가서 내용물만 담아 오면 플라스틱 용기 쓰레기도 발생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시간은 돈이라고 한다. 그 시간에 더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직접 식재료를 사서 조리한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퇴근 길에 음식점에 들러 직접 내 손에 들고 오는 것이 얼마나 시간을 빼앗는다는 것인가. 배달이 밀려 늦게 도착하는 것보다 직접 음식점에 가서 받아 오면 음식맛도 훨씬 더 신선하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로 기다리는 재미도 있는 것이다. 
 
미국 CNN방송이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최대인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지난 2015년 기준으로 132㎏로 미국(93㎏), 중국(58㎏)을 능가해 세계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플라스틱은 분해되는데 100년 이상 걸린다. 일부는 재활용한다지만, 쓰레기 처리도 큰 문제인 것이다. 
 
80년대초 서독에 업무 출장을 간 일이 있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좀 많이 샀는데 계산만 하고 봉투를 안 주는 것이었다. 봉투를 달라고 했더니 봉투도 안 가지고 쇼핑하러 나왔느냐며 의아하게 쳐다 봤다. 출장 왔는데 봉투가 어디 있겠느냐고 하자 그러면 봉투값을 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도 봉투값을 받지만, 그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불친절한 줄만 알았다. 그래서 언성을 높였으나 별 수 없었으므로 결국 봉투를 사기로 했다. 기껏해야 종이 봉투는 50페니였다. 우리 돈 100원 정도다. 그것도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봉투다. 봉투값이 50페니인 줄 알았다면 싸울 것도 없이 봉투를 달라고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비닐봉투를 꺼내 쇼핑한 것을 담아 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우리나라도 봉투값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여전히 플라스틱 쓰레기 공화국이자, 배달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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