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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남편과 함께 작은 텃밭에 들깨를 심기로 했다. 들깨는 향이 강해 비교적 키우기 쉬운 농작물이기에 고심 끝에 선택한 품종이었다. 농기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남편이 삽으로 땅을 파고 내가 호미로 고르는 정도로 허술하게 밭을 일구었다. 골을 타서 들깨 씨앗을 뿌리고 흙으로 가볍게 덮었다. 싹이 잘 나기를 기원하며 곧 잎을 틔우고 자라날 들깨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들깨가 젓가락 길이만큼 자랐을 때 모종을 옮겨 심으려고 밭으로 갔다. 일부 들깨 줄기에 노란 실새삼이 감아 올라가 있었다. 막 깨어난, 어린 들깨가 안쓰러워서 조심해서 실새삼 줄기를 떼어냈다. 실새삼을 일부 떼어내도 미세한 부분까지 정리하긴 힘들었다. 맨 안쪽에 줄기를 감고 있는 부분까지 떼려면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고, 들깨가 상처를 입을까 걱정돼서다. 실새삼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나는 무성한 세력을 자랑하는 실새삼의 큰 부분을 제거하고 그대로 들깨 모종으로 사용했다. 들깨밭은 실새삼이 아예 없는 들깨와 실새삼을 제거한 들깨로 나뉘었다. 실새삼을 최대한 제거했기에 들깨가 잘 자랄 거라 기대를 하며 모종을 모두 옮겼다.

들깨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서 일주일 후에 다시 밭을 찾았다. 실새삼에 감긴 들깨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모양이 기형으로 변해 있었고, 그렇지 않은 들깨는 새잎이 나서 제법 크게 자라 있었다. 실새삼이 침투한 깨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힘을 이미 상실해버린 듯했다. 이파리는 기능을 상실하고 녹아내렸고, 줄기는 가늘어져서 키가 작달막했다. 영양분을 실새삼이 다 빼앗아 가버려서 그렇게 된 것이다. 들깨밭을 망쳐놓은 실새삼이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했다. 실새삼은 우리나라 각처의 들과 밭, 콩밭에 기생하는 덩굴성 일년생 초본으로 숙주가 있어야 자랄 수 있다. 약용식물로 재배하지 않으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유는 다른 식물의 수분을 모두 빨아 먹기 때문에 식물들은 고사한다. 농작물을 키우는 밭에서는 실새삼이 얼마나 치명적인 존재인지 알게 됐다.

실새삼이 감아 올라간 들깨를 뽑아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갈등이 됐다. 잎이 삭아 내렸지만 일부 생생한 잎이나 튼실한 뿌리를 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실새삼이 세력을 뻗쳐 건강한 들깨에도 침투해서 실새삼에 들깨밭을 내줘야 할 게 뻔했다. 실새삼이 감아 올라간 들깨를 찾아 하나둘 뽑아내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실새삼이 침투한 들깨밭을 보니 듬성듬성 비어서 보기가 흉했다. 키가 작아서 모종으로 쓰지 않고 그대로 둔 곳에 실새삼이 침투하지 않은 들깨를 골라 빈 곳에다 옮겨 심었다. 태양은 뜨거웠고, 실새삼으로 손상된 들깨밭을 새로 가꾸는 마음은 착잡했다. 빠진 곳에 키 작은 들깨 모종을 다 옮겨 심고 나니 키가 들쑥날쑥했다. 보기는 좋지 않았지만, 들깨가 병들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일주일 후, 다시 가보니 들깨밭이 푸르렀다. 키 작은 들깨는 그새 제법 자라 일찍 심은 들깨와의 키 차이가 줄어들었다. 놀라운 자연의 힘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다. 실새삼이 침범한 들깨는 제대로 생육을 못 하고 말라 죽고 말았다.

사람과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친밀한 관계라는 이유로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부탁을 들어주다 보면 같이 동조한 사람이 되고 만다. 정치에도 그런 면이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사람이 한 일에 대한 잘못에는 관대하고, 그렇지 않은 정당이나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정에 치우친 판단을 하다 보면 집단이 부지불식간에 부패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비판할 때 공정하고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사리에 어긋나거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를 수정하는 것보다 정리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인간관계에 미련을 가지고 마음이 흐린 사람을 벗하다 보면, 언제 실새삼이 침투한 들깨처럼 자신의 정신이, 삶이 고사할지 모를 일이기에.

아파도 스스로 잘라내며 마음의 밭을,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을 가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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