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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빛 바다와 어우러진 신리항 방파제등대. 김동균기자 justgo999@
옥빛 바다와 어우러진 신리항 방파제등대. 김동균기자 justgo999@

이팝과 아카시아가 국도변 언덕배기를 하얗게 물들였다. 휘날리는 봄기운을 곁눈질하며 한 시간을 달려간다. 좁다란 2차선 도로가 양편으로 더 좁은 길을 이어낸 곳. '내비'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가 나온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어, 여기 맞아?" 내 말에는 대답 없는 그녀. 찻길에 서 있을 수 없어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섰다. 옥빛 바람이 나른한 눈썹을 열어젖힌다. 방파제 사이로 푸른 뱃길을 내어두고 일렁이는 신리항. 차 문을 여니 바람이 닫아버린다. 셔츠 하나만으론 나갈 엄두도 못 낼 날씨다. 겉옷을 챙겨왔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항구를 둘러싼 낮은 집들을 살피며 건너편의 등대로 간다. 점심때를 막 지난 마을이 낮잠에라도 들었나 보다. 코 고는 소리인가. 찰방찰방 물결에 들썩이는 어선들. 마을 동산에선 키다리 소나무들이 항구 쪽으로 꽃가루를 털고 있다.

울산 최남단에 위치한 신리항
방파제 입구에는 요트 한 대가 테트라포드를 밧줄로 붙잡고 항구의 수호선처럼 받침대에 올려져 있다. 50여m 앞의 등대는 새 옷을 갈아입은 모양이다. 이팝꽃처럼 흐벅진 기분을 마구 날린다. 시멘트로 여기저기 땜질한 방파제길, 그 세월이 울퉁불퉁하다. 둥근 등대의 뒤편에 서니 아늑히 펼쳐지는 바닷가마을, 신암리. 고립 장애 표지인 신암등표와 신암항방파제등대, 지난가을에 친구들과 다녀온 나사등대도 보인다. 너른 바다를 뭉글뭉글 달려오는 풍랑 행렬에 제법 눈이 어지럽다. 그저께 결혼기념일의 포식이 아니었더라면 바람에 실려 갔을 것만 같다. 낚시꾼들은 해풍에 굴하지 않고 낚싯줄을 던지고 또 던지는 나절. 신리항방파제등대는 10m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우뚝하다. 선박은 17㎞ 거리의 바다에서부터 등대의 흰 불빛이 내어주는 뱃길을 따라간다.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암 방파제등대의 전경.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신암 방파제등대의 전경.

신고리5·6호기 보상문제로 우여곡절도
울산의 최남단인 신리항은 해파랑길 4코스의 울산 시작지점이다. 머지않은 모롱이를 돌아 나오는 이들은 임랑해변을 걸어 이곳에 다다른 것일까. 해와 파랑을 벗한 머릿결이 은빛 비늘로 반짝인다. 낮은 처마 아래서 볕을 쬐고 있는 할아버지한테 사탕을 건넸다. 안 먹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바람에 내 손이 머쓱. 아마도 청력이 안 좋으신 듯하다. 머라꼬, 머라꼬, 하며 귀를 가까이 대는 걸 보니. 한 할머니가 전동이륜차를 타고 온다. "조, 조오기 물어보소, 저 아줌마한테 머든지 물어보소."

 "요긴 참 편안하고 좋아 보이지요? 갯가 사람들은 무섭십니대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첫마디. 내막은 이곳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부지라는 데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본부가 9년 넘게 집단이주와 보상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2년 8월 '신리마을 이주를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이후, 갈등은 지난해 12월에야 합의를 했다. 이주 마을 조성과 이주는 2023년 8월에 완료될 예정이란다. 신고리 5, 6호기는 2016년 6월에 착공했다. 지난 정부의 신규원전건설 백지화 공약으로 인해 2017년 7월부터 3개월가량 중단되는 사태도 겪었다.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 선언으로 지금은 건설에 가속이 붙었다. 2월의 공정률은 76.49%. 5호기는 2024년 3월에, 6호기는 2025년 3월에 준공된다. 이곳에서 태어나, 함께 물장구치던 머슴애와 결혼해 여태껏 마을을 지켜왔다는 77세의 장금순 씨. '지켜왔다'는 말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릴 때 발가벗고 물놀이하던 데가 지금 우리가 앉은 항구변입니더. 젊을 때부터 남편과 매일 배를 탔심더. 저어기 방파제 옆에 우리 배도 있심니더. 배 안에 불그스름한 부표 같은 거 보이지요? 해녀는 저걸 매달아둔 배에만 탑니더. 1980년대엔 해녀가 160명쯤 됐는데 지가 3등 선수여서 해녀 보상금도 억대 넘게 받았심니더. 배 타기 전엔 담치를 잡아 삶아서 팔았고, 횟집도 오래 했다 아닌교. 요샌 미역건조장을 하는데 함 보러 갈랍니꺼?" 방파제 입구의 가건물 네 동이 그녀의 미역건조장이다. "미역은 지금 없고, 이거요 물에 불려서 밥할 때 같이 넣어 먹어봐요. 양념장에 비비면 맛도 좋고 살도 안 찝니더." 말린 톳 두어 주먹을 비닐에 넣어준다. 그녀는 이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당산 할매(바다지킴이)와 당산 할배(육지지킴이)를 모시는 상좌로 법당을 운영한다. "당산 할매와 할배는 마을을 지키다가 최초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자격을 갖십니더. 거게도 가볼랍니꺼?" 법당 뒤편 낮은 산에 당산 할매집이, 도로변 마을 입구에 오백 살 먹은 당산 곰솔과 당산 할배집이 있다. "저 나무에 그네를 매어 타도 할배 덕에 다치는 애들이 아무도 없었어예. 살기 좋은 마을이지만 여기가 조리(쌀을 이는 기구)터 형상입니더. 조리는 채운 후에 부어야잖습니꺼. 적당히 벌고는 떠나야 재산이 흐르지 않십니더." 당산터 제자로 마을을 위해 40년을 공들였다는 그녀. 이 마을의 터줏대감 격이다. 새댁이 인사를 건넨다. "요새 와 그래 안 보이는교?" "좀 아팠심니대이." 그녀가 새댁에게로 전동차를 몰아가고, 나는 마을회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 열린 해녀집에선 돌미역과 다시마를 팔고, 문밖의 행거에선 두어 벌의 해녀복이 바람과 햇볕에 바짝 말랐다. 다른 항구와 다르게 이곳은 '신리마을 방사선 비상대피 안내판'이 있다. 비상 단계, 행동요령, 지도상 이동로, 집결지와 구호소 등을 상세히 안내 중이다.

울산 최남단에 위치한 신리항 어장과 신고리원전의 모습.
울산 최남단에 위치한 신리항 어장과 신고리원전의 모습. 신고리 5,6호기 건설로 내년 여름이 지나면 추억 속 페이지가 된다.

해안의 바람으로 꽉꽉 들어찬 신암항
행인에게 물어물어 신암항으로 간다. 항구로 드는 내리막길의 담장들이 바다벽화로 맞아준다. 널따란 신암항은 가슴속까지 파란 물길을 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어선들만 밧줄을 붙잡은 채 요동친다. 5m 높이, 170m의 방파제 내항은 바다로 못 나간 해안의 바람으로 꽉꽉 들어차 있다. 입구에는 신암지구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 풍랑위험 안내판, 테트라포드 출입통제 표지판, 초경량 비행체 비행 금지구역 안내판이 있다. 원자력발전소와 인접한 이곳에서 허가 없이 드론 등을 날리다간 경찰서행은 물론 200만원 이하 벌금까지 물 수 있다고 한다. 신암항방파제등대는 16조각 병풍을 오므려 부채꼴로 세워둔 모습이다. 마치 하늘을 받드는 듯하다. 두 번 두드리면 땅땅, 세 번 두드리면 땅땅따앙 대답하는 등대는 철 구조물로 8.1m 높이다. 신리항등대처럼 17㎞의 밤 뱃길을 안내한다. 둘 다 흰 등대이니 배들은 오른쪽 행. 검은 돌고래 여섯 마리가 그려진 등대 기단 위에 섰다. 높다란 테트라포드 너머에서 무섭게 내달려오는 바다. 오후의 태양에 반사된 새울·고리원전과 신리항등대가 희미하다. 무엇이든 바다에 빠뜨릴 기세로 강풍이 휘몰아친다. '이 지역은 풍랑 또는 파도로 인명피해가 우려되므로 출입을 금지합니다.' 등대 앞의 빨간 안내판마저 위협적이다. 등대 뒤편, 항구가 열어둔 커다란 바다의 문, 그 끝에 한 폭의 동양화가 펼쳐져 있다. 등대를 바라보는 낮은 언덕과 춤추는 소나무들과 낡은 정자. 바람 센 바닷가라 최치원이나 이현보 선생처럼 유상곡수(굽은 물에 술잔을 띄우며 시를 읊는 놀이)는 할 수 없겠으나, 시인 묵객들이 세상의 물길과 바람을 즐기고도 남을 만한 풍광이다.

울주군 서생면 신리항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령 400년이 넘는 당산목인 곰솔나무.
울주군 서생면 신리항 마을 입구를 지키는 수령 400년이 넘는 당산목인 곰솔나무.
김려원 시인
김려원 시인

등대 뒤편 펼쳐지는 한 폭의 동양화
 바다를 뛰어넘어 그곳으로 갈 수는 없는 일. 마을 입구의 팔각정에 앉았다. 나는 정자를 독차지하고는 '멍 때리기'에 들었다. 오늘은 '물멍(물을 보며 멍 때리는)'이다. 유모차를 세운 할머니가 올라온다. 물멍은 물 건너가고 나는 할머니의 대화 상대가 됐다. "마을이 꽤 큰데 사람들을 볼 수가 없네요?" "오늘은 바람이 너무 부니까 다들 경로당에 갔심더. 어제부터 열어서 오랜만에 시끌벅적할 낍니더. 내는 허리도 아푸고 다리도 아푸고 해서 운동하러 나왔니더." 이곳으로 시집와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팔순 가까운 노모. 바닷가에 오래 살면 다 해녀가 되는가 했는데, 아니란다. 술고래인 남편을 일찍 사별하고는 횟집 일을 거들며 2녀 1남을 키웠단다. "살아있는 물괴기 머리를 맨 처음에 내리칠 땐 얼매나 겁났는지 몰라. 그래도 묵고살아야 되니 하게 되더라고. 내는 횟집에서 사묵는 횟값이 젤로 아까버. 요 앞에 노란 플라스틱 박스 가득 쌓아놓은 배들 있제? 아침에 저 배 들어올 때 물괴기 만 원어치만 사면 묵고도 남는다. 지 손으로 떠서 묵는 회가 세상에서 젤로 맛나제." 곧 차가 밀릴 시각이다. 해변을 보러 가야겠다며 나는 일어섰다. "거기 가면 화장실도 잘해 놨심더, 여름 되면 여기 정자에도 저기 쪼끄만 해변에도 사람들이 얼매나 오는지 정신이 없다. 모래도 좋으니까 실컨 걸어보고 오시오."

 항구가 이어놓은 뱃길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건너편의 등대를 바라보다가, 새 발자국을 따라 걷다가, 눈을 찔러대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다가, 바람이 벗기는 겉옷을 움켜쥐면서 해 기우는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김려원 시인 이메일: climbk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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