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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수 울산개인택시 기사

인간은 태초부터 멋과 맛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누구나 아름답고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예술적 본능이 아닌가 싶다. 
 
옛날 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던가. 그래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현대문명을 발전시켜 왔으며 그것이 멋과 맛에 기초한 인류의 원초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인생의 멋과 맛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멋은 인간의 외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 사람의 품격과 성향을 대충 읽을 수 있다. 멋을 안다는 것은 변화를 추구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의미도 있다. 환경과 분위기 조건에 맞게 자기표현을 얼마나 조화롭고 세련되게 표출하느냐가 중요하다. 
 
예로 들어 청년은 씩씩하고 예의 바르고 캐쥬얼(casual)한 모습이 좋고, 중년은 중후하고 점잖은 모습이 좋고, 노인은 노인 다운 모습에서 진정한 멋을 찾을 수 있다.
 
신사는 양복이 제격이고 군인은 군복을 입어야 멋있고 테니스 선수는 테니스복을 입어야 아름답다는 것은 일반적인 멋의 통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 나름대로의 꾸밈으로 멋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멀쩡한 바지를 찢어 입어야 멋있고 간판 글귀도 감성을 자극해야 멋있고 남들보다 더 고급이라야 멋있다고 한다. 이것은 비뚤어진 현대인의 말초적인 감성만을 자극하는 하나의 유혹일 뿐 진정한 멋의 본질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멋은 외적인 면모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자기 행동의 품격과 운치를 얼마나 좋은 결과물로 내보이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면 맛은 인간 내면의 세계를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신뢰와 좋은 감정을 줄 수 있는 자기 속내를 내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요즘 세상에는 이러한 가치를 무시하고 자기 잘난 멋과 맛에 취해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적인 질서와 정서에 반하는 것이면 오히려 지탄받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인생의 맛 속에는 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용서와 배려의 넓은 도량이 있어 은은한 인간미(人間味)에 끌릴 수 있어야 한다. 같이 있으면 편안해서 좋고 헤어지면 아쉽고, 기억 속에 항상 생각나는 사람, 그리고 양보와 겸손이 몸에 밴 사람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무리 예쁜 여인도 악을 쓰면 추해 보이듯이 비록 멋은 덜해도 상냥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환한 미소에 끌릴 수 있어야 맛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멋에는 가식이 있지만 맛에는 진실이 숨어있다. 음식을 두고 보기(visual)는 좋은데 맛이 없거나 또 처음은 좋은데 결과가 나쁘면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고도 했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겉 다르고 속 다르고, 네 맛도 내 맛도 없다는 말이 된다. 우리 인생도 개살구와 같으면 실패한 인생이다. 그래서 외모(멋)보다는 심성(맛)이 좋아야 맛있는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꽃잎은 시들면 향기마저 사라지지만 인생은 늙어도 멋과 맛이 살아 있는 한 오월의 장미꽃 보다 예쁘고 백합보다 진한 인생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법륜스님께서 하시던 말씀에 “예쁘게 물든 단풍잎은 어느 봄꽃보다 예쁘다"고 하셨다. 봄꽃은 피고 며칠이 지나면 시들지만 예쁜 단풍은 책갈피에 끼워 두고두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바쁜 세상 무슨 멋 타령 맛 타령이냐고 할지 몰라도 멋과 맛이 살아있으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인생이다. 하지만 멋과 맛이 주는 인생의 풍요로움 속에 혹시 허상을 쫓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조용히 뒤돌아보는 것도 멋과 맛을 아는 인생의 지혜로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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