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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길 시인·평론가
안성길 시인·평론가

과거 정가의 한 인사가 그 가족과 함께 부도덕하다며 동네북이 된 일이 있었다. 그때와 매우 유사한 건임에도 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보인 상반된 태도에 옹호하는 치들도 더러 있지만 후안무치 그 자체란 날카로운 평 또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필자는 함께 오르내리는 "내로남불" 사자성어의 짜임이 우리 한글에 영어와 한자어가 조합된 묘한 구성에 어원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여기저기 자료를 살폈다. 그러다 표준국어대사전엔 없는 이 신조어를 유튜브에 넣었더니 "반크한류학당"이 만든 한 동영상에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문장 하나와 마주치곤 많이 당황했다.


 그것은 "평소 양다리인 친구를 비판하던 민준이 자만추 CC인 세젤예 여친 몰래 소개팅에 나가 꾸안꾸 스타일인 애빼시 보라의 매력에 푹 빠져 사귄다는 말에 정말 내로남불이네요."란 구절이었다. 평소 양다리를 걸친 친구의 행위를 비판하던 민준이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하던 캠퍼스 짝인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친 몰래 소개팅에 나가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스타일인 애교 빼면 시체인 보라의 매력에 푹 빠져 사귄다는 말에, 정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태도네요라 풀어 읽고는 실소가 나왔지만 참고 다시 살폈다. 의사불통과 세대 간 단절이란 즉시적인 사태 그 너머에 어렴풋 일렁이는 그들 내면의 실루엣이 살짝 느껴졌다. '자만추', '세젤예', '꾸안꾸', '애빼시' 등 줄임말은 요즘 세대의 SNS에 넘치는 모습이다. 이처럼 말을 필요 이상으로 줄인다는 것은 시간의 경제성 말고도 결과를 금방 보고 싶어 하는 조급성과 거추장스러움, 정상적인 과정이 너절하게 느껴지는 짜증,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의 힘겨움 등의 심리적 반영이 아닐까 싶다.


 최소한의 언어 사용으로 최대의 표현효과를 의도하는 것이 시라는 문학 장르의 속성이다. 이런 시가 속한 문학은 인간의 보편적 정신을 가장 고등하게 다룬다. 이의 대척점에 있는 물질의 풍요를 가장 강력하게 추구하는 게 자본주의다. 이는 말 그대로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하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를 가리킨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관계에서 가치의 적절하고 마땅한 즉 고른 분배로 이루어진 공정한 평등을 "형평성"이라 말했다. 한편 지금 우리의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속성 중 하나인 저 효율성은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 추구가 원칙이다. 여기엔 불행히도 "형평성"이 지닌 미덕인 생산에 대한 공헌도, 기회균등, 삶에 필요한 최소의 수요 등의 기준이란 가치 판단이 없다.(다음백과)


 그래서 효율성에는 생산성 향상이란 미명의 사탕이 발려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어미 애비도 피눈물도 없는 자본과 같은 자기증식 논리만 존재하는 이기의 극치, 후안무치가 있다. 정말 조심해서 저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그 숨겨진 맹독의 가시에 치명상을 입는다.
 지난 2020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였다. 부연한 내용을 보면, "같은 사안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내로남불의 뜻을 한자로 번역해 새로 만든 신조어"라 설명하고 있었다.


 심리상담사이기도 한 필자의 시선으로 저 "아시타비(我是他非)" 즉 "내로남불"을 풀어보면,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것이다. 참으로 뻔뻔하게 이중 잣대를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아무런 부끄럼 없이 휘두르고 있다. 진실로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이다. 심리적 장애 곧 마음이 파탄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정상의 심리상태다. 그렇다면 무엇이 저토록 비틀러 버리게 만들었을까를 살펴야 한다.


 너무도 뻔뻔한 저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오로지 자기합리화에만 혈안이 된 태도는 그라나 의외로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 즉 이념이나 정치 혹은 종교 등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리고 그렇게 "내로남불"식 태도가 자주 발현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신념이 되는 무서운 상황을 자주 목도한다. 아무리 상식적이고 보편적이고 시비가 분명한 것, 혹은 참된 진리를 가지고 그것의 잘못을 설명하고 설득해도 막무가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상황은 그에게 심리적 강화만 일으킬 뿐이다.


 이처럼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타당한 사실들이 즉 시비가 객관적으로 분명하고 잘못된 것이 그들에게 옳고 굳건한 신념이 되는, 적반하장 주객전도의 상황이 정말 위험해 지는 경우는 대중 앞에서 "거짓말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저 유명한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의 말처럼 자칫하면 누군가를 극단적인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방치해선 절대로 안 된다. 더구나 지금 일본이 벌써 몇 년째나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엄연한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돈과 편의와 각종 우대를 내세워 일본영토라 선전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조차 세뇌교육 시키는 예를 똑똑히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은가.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내로남불"식 태도로 일관하는 이들을 설득해 시비곡직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일단 그들과의 정면승부를 피하고 스스로의 역량을 기를 것을 조언한다. 그렇게 실력을 길러 그들 논리를 격파하면 의외로 다시 덤벼드는 경우는 거의 없이 꼬리를 내리고 만단다. 일본이건 그 어떤 세력이건 "내로남불"식 이중인격에는 실력이 진정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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