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부리의 문장론
쇠부리의 문장론
  • 이상수
  • 2022.06.0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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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이상수 수필가
이상수 수필가
이상수 수필가

이 문장은 수백, 수천 번의 메질로 태어났다. 대장간의 호미, 낫, 쇠스랑을 본다. 날 선 농기구들의 어깨가 단단하다. 제 이름을 얻기까지 저것들은 얼마나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해야 했을까. 눈부신 절차탁마 앞에 서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광석을 녹여 쇠를 뽑아내거나 가공하는 모든 작업을 쇠부리라 한다. 원광석을 숯과 함께 용광로에 넣어 하루 정도 불을 때면 천삼백 도 이상의 고열에 녹아내려 쇠똥과 분리된 쇳물이 나온다. 이 선철을 단야하면 농기구가 되고 조리도구로도 탈바꿈한다. 


 다섯 평 남짓 허름한 대장간엔 여러 가지 도구들로 가득 차 있다. 흙으로 만든 화덕은 불꽃을 일구며 시커멓게 그을렸고 손풀무가 바쁘게 들락거린다. 널찍한 가운데를 차지한 모루는 반질반질 닳아 관록을 자랑하고 집게와 숫돌, 물통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대장간에서의 작업은 풀무질, 달굼질, 집게질과 메질, 담금질의 순서를 거친다. 풀무질과 담굼질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글을 부리는 일은 늘 힘이 들었다. 사물들은 흐릿하게 다가왔고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머릿속을 스쳐 가는 숱한 이미지를 채집해서 구체화해보려 하지만 각각의 화소들은 서로 겉돌기만 했다. 주제는 날랜 물고기처럼 생각의 그물을 빠져나갔고 그런 날엔 책상 앞에 앉아 불면으로 밤을 새웠다. 


 불꽃이 이글거리며 탁탁 튀어 오른다. 대장장이는 귀로 불의 소리를 듣고 눈으로 온도를 읽는다. 고로 안에서 풀무질에 따라 숨 쉬는 불꽃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인 양 온갖 몸짓으로 넘실대며 춤을 춘다. 빨간 불이 노랗게 될 때가 철을 앉힐 시간이다. 그건 감으로 알게 된다. 이때가 제련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놓쳐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집게를 잡은 얼굴에 불꽃이 일렁인다. 바야흐로 대장장이와 불과 쇠가 혼연일체가 된다. 잠시 뒤, 차가운 무생물이 꿈틀거리며 드디어 생명을 얻는다. 


 좋은 쇠를 얻기 위해선 강한 것과 무른 것을 붙여야 한다. 녹는 온도가 다른 쇠를 서로에게 녹아들게 접합하는 기술은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무른 쇠를 달궈 모양을 만들고 불순물을 제거해주는 붕사를 바른 후, 강한 쇠를 화덕에 넣어 두 개를 잇는다. 상충되는 것들이 맞물리면서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 잔잔해지면 꺼내서 망치로 힘껏 두드린다. 꺼낼 때를 놓치거나 두드림이 약하면 잇기는 실패하고 만다.  


 주제가 정해지면 살을 붙이고 적절한 비유를 통해 숨결을 불어 넣는다. 그건 이제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식상하고 관습적인 비유는 사문(死文)이 되어버리기 쉽다. 원래의 사물과 비유되는 개체 사이엔 충돌이 일어난다. 서로 길항하면서 포옹하고 갈등과 화해를 반복한다. 어떨 땐 좌절하고 또 어떨 땐 넘어지기도 하면서 마침내 두 개의 사물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하나의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시우쇠를 화덕에 넣는다. 검은 막이 서서히 사라지고 나면 모양을 잡을 순간이다. 쇠가 알맞게 달궈진 후 집게로 끄집어내 모루에 올려놓고 두들긴다. 비늘이 벗겨지면서 쏟아내는 붉은 가루가 사방으로 떨어진다. 싱싱한 물고기가 퍼덕거리는 것 같다.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선 열 번 이상 달구고 천 번을 때려야 한다. 나쁜 쇠는 망치가 쩍쩍 달라붙지만 좋은 쇠는 땅땅 튀어 오른다.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지면 식기 전에 물에 담근다. 담금질은 쇠를 강하게 하고 힘을 응축시킨다. 이삼 초의 극히 짧은 시간이 쇠의 운명을 가른다. 곡괭이나 도끼는 전체를 잠기게 하고, 칼이나 낫은 날 부분만 물에 살짝 담근다. 그래야 날이 강해진다. 잘 만들어진 칼로 음식을 자르면 사박사박 깊은 물소리가 난다.


 처음 건져 올린 글은 아직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한다. 핵심에서 벗어난 문장은 중언부언하고, 겉멋이 잔뜩 들어가 기교만 난무한다. 정제하기 위해선 결단이 필요하지만 욕심이 눈을 가려 쉽지 않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육십 년 가까이 썼고 소동파의 적벽부는 수북이 쌓인 퇴고 더미에서 탄생했다. 때릴수록 강해지는 쇠처럼 벼리고 담그며 더 빛나는 문장을 얻기 위해 몇날 며칠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불을 알려면 십 년, 쇠는 오 년에서 십 년이 걸린다고 한다. 도합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쇠를 부릴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건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망치질을 쉬지 않는 대장장이의 팔엔 힘줄과 근육이 불끈거린다. 끊임없이 정신과 육체를 단련해야 삶이 녹슬지 않는다는 듯.  


 담금질이 끝난 호미는 자루를 만나 댕기를 맨다. 수메꼬리를 달궈 나무에 박으면 연기를 풀썩이며 결속을 파고 들어가 꽉 끼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화인(火印)을 찍는다. 비로소 그의 문장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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