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찬스
부모 찬스
  • 정경아
  • 2022.06.1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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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정경아 수필가
정경아 수필가
정경아 수필가

포켓몬 빵 열기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질 유행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빵 구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한정판 명품을 구하기 위해 백화점이 문 여는 시간을 기다렸다 매장을 향해 질주하는 '오픈런'을 방불케 한다. 유튜버들은 발 빠르게 빵과 함께 들어있는 띠부씰(떼어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을 보여주는 영상을 찍어 올려 유행에 화력을 더했다. MZ 세대 어른들은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아이들은 빵을 구하고 스티커 모으는 경험을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트나 편의점을 찾는다. 시간을 다투는 싸움이다. 아이들에게 신상 같은 경험을 주고 싶은 마음에 부모나, 조부모들까지 가세해 빵이 매장에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대기 줄을 섰다.


 나 역시 늦은 밤에 빵이 입고된다는 소식을 듣고 줄을 서기도 했으며 중고 마켓에 올라온 빵을 사서 아이에게 건넸다. 중고 마켓은 빵 시세가 올라가자 먼저 구해서 거래 수익을 남기려는 자들로 북적였다. 플랫폼 노동자들도 빵을 구해서 콜이 들어오는 사이 시간에 거래하기도 했다. 


 빵을 획득한 아이는 기뻐서 인증샷을 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그것도 잠시, 아이의 얼굴에 작은 실망 하나가 지나갔다. 평소 편의점 점장과 잘 알고 지낸다는 어느 지인 부모는 귀한 빵을 한 박스나 구했다는 인증샷이 따라 올라왔다. '부모 찬스'의 크기는 편차가 심해 아이가 거머쥘 결과물에도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지켜봤다.


 개켜둔 기억 하나가 펼쳐졌다. 중학교 시절, 여름 방학 내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적이 있었다. 개학날 꾸깃꾸깃하고 손때가 잔뜩 묻은 내 봉사활동 이력이 담긴 종이는 여타 친구들 것과 달랐다. 친구들이 가져온 결과물은 꾸김살 없는 깨끗한 종이에 달랑 두세 줄이 전부였다. 내 어깨에는 자부심으로 힘이 잔뜩 들어갔다. 친한 친구는 나에게 뭐 하러 힘들게 돌아다녔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버지 회사에서 확인받았다며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최소 시간만 간신히 채워왔지 나처럼 여름방학 기간 동안 전력을 다한 사람은 없었다. 바지런하게 돌아다닌 만큼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과 함께 봉사활동하고 싶은 마음을 영영 상실했다. 


 '아빠 찬스'라는 말이 연일 화제다. 자녀의 출세를 위해 부모가 가진 사회적 지위를 사적으로 남용해 입시비리를 저질러 사회분열을 낳은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어느 장관 후보자로 거론됐던 사람은 본인이 근무하는 대학교로 자녀들을 의대 편입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정황뿐 아니라 다른 잡음들도 잇따라 결국 낙마했다. 또 다른 대학교수들은 고등학생이었던 자녀들을 저명한 학술지의 공저자로 등재한 편법을 저질렀다. 한 고등학교 교무부장이었던 아버지는 쌍둥이에게 시험 답안을 유출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지금에서야 속속 불거져 나오지만 우리 사회는 부모 찬스를 가진 자와 없는 자로 갈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간혹 자성적인 움직임도 있긴 하다. 하지만 뒤늦게 편법이라고 밝혀진 사건들 중 일부는 이미 공소시효를 넘겼기에 수혜를 본 자녀들은 탄탄대로를 걸어가고 있는 일이 다반사다. 


 '기회'는 시간과 맞물려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간을 관장하는 신인 카이로스는 앞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있으나 뒤통수는 대머리다. 좋은 기회란 그만큼 지나가면 다시 잡기 힘들다는 걸 뜻한다.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녀들이 지나칠 기회도 머리채를 붙들고 와 그들 손에 쥐여 준다.


 내 아이를 잘 살게 하는 일인데 뭐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으며 당신도 유용할 권리가 있다면 자식에게 해주지 않을 것인가를 묻는다. 당신도 얼마나 떳떳한지 말해보라고 한다면 어느 누가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을까. 자녀만을 위한 왜곡된 사랑이 사회질서와 충돌할 때 어떤 가치가 우선되어야 하는지 쉽게 손들기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한 나라 지도자들이 보이는 이중적 모습은 실망감도 혼란도 크다. 사회 격차를 해소한다는 논리 뒷면에 내 자녀만은 남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자리에 안착시키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부모 찬스'가 사실은 누구나 쉬쉬하는 정상적인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습되는 주류에서는 창의성이 나오지 못한다. 결핍이,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는 환상을 믿고 싶다. 변방에서 새로움이 생겨난다고 말씀하신 신영복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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