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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왕생이
삽화. ⓒ왕생이

107년 전 남극해 밑으로 침몰한 목조선 '인듀어런스 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해양 고고학자와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탐사팀 '인듀어런스 22'가 남극 웨들해 지하에 잠들고 있던 인듀어런스 호를 촬영해 공개한 것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이 탔던 인듀어런스 호는 100년 이상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침몰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남극해는 수온이 너무 낮아 나무를 부식시키는 미생물이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인듀어런스호는 1915년 섀클턴이 대원 27명과 함께 남극 대륙 횡단에 도전했으나 남극점을 150㎞ 남긴 지점(웨들해)에서 결빙으로 난파됐다.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섀클턴과 대원들은 구명정을 타고 400㎞가 넘는 얼음 바다를 헤매며 사투를 벌였다. 가까스로 무인도를 발견하고 한숨을 돌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구조대가 오지 않자 섀클턴은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했다. 4명의 대원을 뽑아 약 1,200㎞가 넘는 거리의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가서 구조 요청을 다시 하기로 했다. 고군분투한 끝에 섬에 닿은 이들은 다른 대원들이 무인도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조난된 지 634일 만이었다. 전원 구조. 이로써 섀클턴의 남극탐험은 '위대한 실패'로 불리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섀클턴의 리더십이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협동해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무사히 귀환시킨 점은 섀클턴이 전설적인 탐험가이자 훌륭한 선장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비록 남극 탐험에는 실패했지만 '희망의 리더십'을 톡톡히 발휘한 덕택이다. 한 종교인의 글을 보니 섀클턴의 이러한 행동은 세 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적었다.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버린 것, 솔선수범한 희생, 그리고 믿음에 따른 용기였다고 했다. 공감이 갔다. 더불어 하나 더 보탠다면 열정을 기반으로 한 '소통'을 꼽고 싶다. 
 
섀클턴이 탐험을 시작하기 전 선원모집 광고를 냈다. '위험한 여행을 감행할 지원자 구함, 쥐꼬리 월급, 살을 에는 추위, 몇 달이고 계속되는 칠흑 같은 어두움, 지속되는 위험, 무사 귀환은 보장 못함, 그러나 성공할 경우 명예를 얻고 영예롭게 될 것임…' 모집 광고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모한 문구다. 시쳇말로 '셀프 디스(자기 비하)'하는 자가 아닌 이상 지원자는 없을듯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27명의 대원을 선발하는데 무려 5,000명이나 지원했다. 그중에서 섀클턴은 동료와 술판을 벌이며 큰 소리로 얘기할 수 있고, 부둥켜안고 노래할 수 있는 정열적이고 명랑한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험난한 항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조재훈 편집국장
조재훈 편집국장

지금은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게 물가 공포다. 천정부지로 폭등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판은 요지경이어서 더욱 짜증이 난다. 지자체는 내달 1일 민선 8기 출범을 앞두고 제 밥그릇 찾기에 바쁘다. 사정이 이러니 서민들은 기댈 곳조차 없다. 열불이 난다. 씁쓸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원래 힘들고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진정한 지도자를 갈구한다. 민선 8기 지자체 당선자들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눈앞의 위험만 보는 게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하는 불투명한 신념을 향해 '퍼스트 펭귄' 같은 섀클턴 식 리더를 찾게 된다. 그렇다고 대책 없는 희망이나 무책임한 위로의 말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확한 문제의식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움츠려 있는 우리를 깨울 수 있어야 한다. 
 
자고로 가장 뛰어난 지도자는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하는 자라 했다. 그다음은 가까이 칭송하고, 그다음은 두려워하고, 그리고 가장 나쁜 지도자는 그를 업신여기는 것이라 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늘 그랬듯이 서민들은 정책에 대한 불안, 불만, 불신 등 '3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때론 피해의식으로 나타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모호한 말장난이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의미다. 이런 때일수록 칭찬받지는 못해도 '나쁜 지도자'라는 소리는 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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