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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화 수필가
윤경화 수필가

정원 아래에 이웃의 고사리 농장이 있다. 일반적인 농작물과는 달리 이른 봄에 새순을 거두고, 지각한 순들은 남아서 녹색의 여름 들판을 만든다. 고사리가 텃밭머리 쪽 빈터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은 삼 년 전부터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한 채 늙어버린 몇 포기를 보고서 그들의 이동이 시작된 것을 알았다. 이듬해는 실하게 열 포기 정도 올라와 산초잎과 달래를 함께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성찬의 고명이 되어 봄날 향기로운 저녁 식사의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뜻하지 않게 상수리나무 아래 한 평 정도의 고사리밭을 갖게 된 나는 경사지에 돌계단을 만들어 짬이 날 때마다 오르내리며 그들과 새로운 관계에 빠졌다. 쉬는 날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내려가서 주변을 살피는데 그곳은 어느새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전에 보이지 않던 식물이 매해 빈 곳을 채우고, 곤충과 새, 고라니까지 아래 농장으로 빈번하게 드나드는 통로이면서 그들이 잠시 머무는 광장인 것 같아 강한 호기심 속에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가끔 듬직한 상수리나무에 기대어 새로 생긴 고사리밭을 감상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호사다. 자연이 이루는 공간은 사람의 셈법이 배제되고, 그야말로 걸림이 없는 사유의 장소다. 딱새가 나무창고의 구석진 곳을 드나들며 알을 품고, 새끼 치는 일을 보았다. 집을 마련하는 오색딱따구리의 순발력 넘치는 건축술에도 탄복했다. 나무와 풀은 잎의 모양과 크기, 두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바람을 맞이하고, 비가 오면 춤을 추었다. 이렇듯 고사리가 이주한 작은 자투리땅은 자연도서관이며, 공연장이었다.  

 주인이 불분명한 땅에 내가 먼저 깃발을 꽂아두고 다양한 느낌을 즐기는 일은 즐겁고 행복했다. 소유에 대한 부담이 없을 때 인간은 담박할 수 있는 것 같다. 처음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 이웃이 필사해준 안도현의 시 '나뭇잎 하나'가 떠올랐다. 물 위에 내려앉은 벌레 먹은 나뭇잎에 투영된 현대인의 엉성한 삶이 바로 나의 모습인 듯했다. 하지만 치열했던 시간은 가고 소소한 일상 속으로 들어온 지금의 작은 변화는 나의 기쁨을 더 선명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미상의 고사리밭 때문에 누리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즐거움은 인간의 소유 본능과는 얼마나 모순된 심상인가. 이게 뭘까? 호접몽에 든 듯한데 갑자기 "뭐하시능교?" 하는 소리에 놀라 보니 고사리 농장 주인이다. 몇 번 인기척을 한 모양이다. "아, 네에. 볕이 좋아서요." 한잠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사실 볕이 좋았다. 봄이 무르익을 때쯤 숲속으로 들어온 햇빛은 맑고 따사롭고 고결한 연둣빛이라 반하긴 했다. "여기 고사리는 사모님 뜯어 잡수소. 그리고 저 꿀밤나무는 비뿌고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몽상에서 빠져나왔다. 

 고사리 농장에서 건너온 고사리 2세는 소유주가 있었던 것이다. 그 주인은 우리 부부에게 '온정을 베풀어 앞으로 채취권을 주노라.' 하는 윤허의 말씀 같은 뉘앙스를 남겼다. 또 고사리의 생존환경을 위해 수십 년 된 상수리나무를 베어버리라는 엄명 같은 말도 곁들였다. 일단 대답이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제도권 내에서 잘 훈련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가. 그러나 말의 행간까지 계산하느라 시간을 썼다. 가장 정답에 가까운 말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당당함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개척자의 프리미엄 의식 아닐까 싶다. 산골에서 자신이 일군 땅의 주변은 당신 권리의 그림자까지도 소유권이 있다는 의식 같은 것 말이다. 고사리의 자발적 이주를 고정불변의 지분이 있는 자식이 품안을 떠난 것 정도로 해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수십 년 된 상수리나무를 베어버리라는 말은 철저히 적자생존의 논리가 체화되어 나오는 말처럼 자연스러워 나는 침묵하고 말았다.   

 이쯤 되자 나도 몰랐던 현실적인 나의 모습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한 평짜리 고사리밭을 임대라도 한 듯 일단 기가 꺾였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고사리의 친정은 고사리 농장이며 상수리나무와의 친밀도마저도 내가 더 떨어질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우쭐하는 기운이 만면에 가득해 돌아서면서까지 고사리밭 권리를 윤허하는 기세다.  

 잠시 문명이 부재하는 별에 정착의 자격을 얻은 느낌을 고스란히 안고 혼자 슬며시 헛웃음을 지었다. 이주한 고사리 2세 덕분에 알게 된 것인데 제도권 내에서 발생한 권리의 힘과 산마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권리가 갖는 힘은 달랐다. 그것은 권리의 속성부터 다르다. 전자는 냉정한 강제성이라면 후자는 따뜻한 정과 걱정, 배려가 있었다. 그의 모순된 권리에 대한 이해를 내가 어려워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설사 산기슭에 붙어 있는 한 평의 실제 소유주는 고사리 농장 주인이라 해도 그 정도는 이웃이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래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만큼 불확실한 것이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 삶에 대한 수많은 궁리와 계획을 반복하고 있지만 실천하는 일과 결과에는 종종 의외성이 있었고 행과 불행이 내 의지를 넘어설 때도 있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웃이란 이유'가 소작료가 되어 뜬금없이 고사리 농장 소작농이 된 것만 봐도 그러하지 않은가.


 내가 소작농의 자세에서 벗어나려 애를 써도 그 남자만 보면 예전보다 인사말이 공손해진다. 철삿줄처럼 마른 고사리를 물에 불릴 때도 '덕분에 잘 먹겠다.'라는 말이 입속에서 굴러다닌다. 자본주의는 늘 나를 이익에 고개 숙이게 훈련시켰다. 하지만 고사리 2세의 천이를 보았으니 자연의 섭리에 더욱 공손해질 것 같다.
 그러기에 "꿀밤나무 비뿌소."는 동조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꿀밤나무' 편이다. 소작농이지만 산자락의 식구 중 하나인 나의 중요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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