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경덕왕 때 분황사에 한 여인이 어린 아이와 함께 찾아와 지극정성을 들였다 한다.
엄마 손을 잡고 분황사 경내에 들어선 다섯살배기 아이가 안타깝게도 세상의 빛을 볼수 없는 맹아였다. 어둠에 갇힌 자식을 위해 희명(希明)은 법당의 천수대비 벽화 앞에서 정성 들여 절을 올리고 또 엎드려 기원했다. 어느날 간절한 마음을 담은 향가를 지어 아들에게 노래 부르게 하자 애틋한 진심이 하늘에 닿았을까 아이는 눈을 뜨게 된다. 이 향가가 10구절로 나눠 지은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이다.
장창호 작가는 분황사에 전해지는 전설을 소리 연기로 펼치며 이 향가의 한 구절을 읆는다.
무릅을 곧게 하고 두 손바닥을 모아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에 비옵나이다.
천손의 천눈에 하나로 놓아 하나를 덮으사 둘 없는 저울시다.
하나를 그윽이 고치기 바라나이다.
아아, 놓아주신, 자비야말로 클 것이외다.
도천수대비가에 얶힌 이야기가 신라 온나라에 퍼져 왕의 귀까지 들어 갔다. 불심을 빌려 아들까지 얻고 불국사 등 불교문화의 꽃을 피운 경덕왕은 이일을 구실로 엉뚱한 발상을 한다. 당시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려는 왕의 개혁 정책에 귀족들은 따르지 않으려 했다.
육두품 이상 문무백관들에게 나눠준 급여 대신 땅을 내어주는 녹읍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당근과 채찍이 될 카드로 왕권을 흔드는 귀족들을 구슬리고 국고도 아낄려는 심산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귀족들의 영향력을 키워 왕권에 도전하고 피비린내 나는 쿠테타를 일으켜 나라가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한다.
어쨋든 분황사의 천수보살의 영험함은 널리 전해지면 신라의 땅에 관음 신앙도 두텁게 자리하게 된다. 소리 연기 : 장창호 극작가, 정리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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