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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
송은숙 시인

얼마 전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완역본을 읽었다. 두 권으로 축약한 책은 읽은 적이 있는데 완역본은 처음이다. 무려 5권, 2,500여 쪽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레 미제라블』 하면, 증오에서 자비로, 불신에서 사랑으로 바뀌게 되는 장발장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이 방대한 소설엔 19세기 프랑스의 역동적인 사회상이 버무려져 있다. 뜻밖에도 장발장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미리엘 주교에 대한 이야기가 무려 100쪽 가까이 이어진 다음, 2편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뿐 아니라 워털루 전투, 당시 파리의 모습, 대혁명 이후의 정치적 혼란상, 심지어 파리의 하수도 모습까지 장황하게, 하지만 흥미롭게 서술된다. 감미롭고 순수한 사랑을 찬미하는 위고의 낭만주의적 사랑관을 엿보게 되는 건 덤이다. 군데군데 수록된, 축약본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시편들을 온전히 읽은 것도 좋았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사랑을 예찬하는 시편들은 시인이기도 했던 위고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온갖 탈선과 삽화와 명상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소설,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가장 멋쩍은 수다 옆에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라는 문학 비평가 랑송의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되는 소설이다. 

워낙 격동의 시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어 『레 미제라블』은 영화, 뮤지컬, 연극 등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재해석되어 왔다. 책을 읽은 뒤 휴 잭맨이 장발장으로 나오는 2012년 판 뮤지컬 영화를 다시 보고, 유튜브에서 10주년과 25주년 기념 콘서트도 찾아 감상했다. 두 뮤지컬끼리, 혹은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를 서로 비교해 보는 일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다른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장가방이 장발장으로 나오는 <레 미제라블, 더 오리지널>이란 제목의 1958년 영화는 중간중간 나레이터가 줄거리를 설명하는데,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편이다. <사이코>의 안소니 퍼킨스가 자베르로 나오는 1978년 판은 장발장이 감옥에 가게 된 계기와 감옥 생활, 탈옥 과정을 자세히 다루었는데, 그래서인지 여관집 주인 테나르디에나 그의 딸 에포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빌 어거스트 감독의 1998년 영화는 장발장과 자베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역시 테나르디에나 에포닌은 찾아볼 수 없는데, 반대로 아까 말한 2012년 뮤지컬 영화에선 코제트의 역할이 희미해지고 에포닌에게 노래를 몰아주어 거의 주연급으로 나온다.

그중 1948년 리카르도 프레다 감독의 영화는 원작과 다른 부분이 많다. 인형을 든 아이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코제트 앞에서 자신이 사준 인형을 쭉쭉 찢어버리고, 바리케이드의 학생을 때려눕히거나 코제트의 뺨을 때리는 등 순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폭력적인 장발장이 나온다. 무엇보다 장발장이 테나르디에가 쏜 총에 맞아 죽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감독의 의중이 궁금했다. 

『레 미제라블』은 아동용으로도 많이 각색되었다. 실제 우리나라에선 아동용 책이 '장발장'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반면, 유럽에선 '코제트'라는 제목으로 나온다고 한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론 일본에서 제작된 <레 미제라블: 소녀 코제트>가 우리나라에도 방영되었다는데, 강아지 슈슈, 장발장의 조수 아란, 코제트에게 글을 가르치는 신부 등 원작에 없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고, 자베르도 잘못을 뉘우치고 끝까지 살아있다. 아동용이라서 그런지 코제트의 어린 시절을 많이 보여준다. 

그밖에 원작에서 코제트가 혁명에 전혀 참가하지 않고 너무 수동적으로 그려졌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다소 적극적인 코제트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팡틴의 처녀 시절과 몰락 과정을 세세히 그리거나, 장발장이 코제트에 대해 부정 이외에 연정을 느끼는 것처럼 묘사한 드라마 등, 정말 많은 영상물이 나왔다. 

어쨌든 한 편의 소설을 읽고 거기에서 파생된 작품들을 찾아보니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 법과 정의의 갈등, 용서와 화해, 당시 민중의 비참한 모습, 순수한 사랑과 열정, 조국애, 타인을 위한 희생 등, 감독이나 연출가가 원작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표현 방식과 주안점이 달라지고, 작품 자체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다. 작품마다 감독의 철학과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2차 창작물은 독자적인 저작물로 인정된다고 하니, 거기에 기반을 둔 3차 창작물도 나올 수 있다. 실제 뮤지컬을 패러디하거나 인물 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팬픽도 많다고 한다. 『레 미제라블』은 끊임없이 창작의 샘을 자극하는 문학의 화수분인 셈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하게, 여러 버전으로 표현하고, 해석하고, 가공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레 미제라블』 덕분에 7월 초의 무더위를 수월하게 견뎠다. 남은 더위는 위고의 다른 작품인 『파리의 노트르담』과 함께 이겨내 볼까 곁눈질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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