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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기념공원의 유엔군위령탑. ⓒ이상원
부산시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의 유엔군위령탑. ⓒ이상원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이상원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이상원
유엔기념공원 무명용사의 길. ⓒ이상원
유엔기념공원 무명용사의 길. ⓒ이상원
유엔기념공원 도은트수로. ⓒ이상원
유엔기념공원 도은트수로. ⓒ이상원
유엔기념공원. ⓒ이상원
유엔기념공원. ⓒ이상원

방송에서 지난 6월 21일 6·25전쟁에 참전한 故 존 로버트 코미어 캐나다 참정용사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사후 안장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2015년 5월,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베르나르 씨가 처음 사후 안장된 이후 14번째였다.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에서 매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도 죽어서 다시 이 땅에 묻히기를 희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을 품고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그날은 마침 갓 소위로 임관한 남녀 장교가 견학을 온 날이라 함께 추모관에서 6·25전쟁과 유엔기념공원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시청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이곳은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로 1951년 유엔사령부가 조성하고, 1959년부터 유엔이 관리하다가 1974년 이후에는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하고 있다. 전체 면적은 4만여 평으로 입구의 광장, 상징구역, 주묘역, 녹지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징구역에는 6·25전쟁 참전 22개국(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국기와 대한민국 태극기, 유엔기 등 24개 깃발이 게양되어 있다. 유엔기는 53사단 의장대에 의해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10시에 게양식, 오후 4시에 하강식을 한다. 그 시간엔 추모곡이 울려 퍼지고 정중하게 의식을 함으로써 감사와 숙연함이 교차하게 된다. 

처음에는 11개국 전사자 유해 11,000기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필리핀 태국 등 7개국 유해 전부와 그 외 국가의 유해 일부가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가고 지금은 2,315기가 남아 있다. 영국 889명, 튀르키에(터키) 462명, 캐나다 381명, 호주 281명, 네덜란드 120명, 프랑스 44명, 미국 40명, 뉴질랜드 32명, 남아공 11명, 노르웨이 1명, 한국(카투사 소속) 37명, 무명용사(유엔군인데 어느 나라인지 신원을 알 수 없는 전사자) 4명, 기타(비전투요원) 11명 등이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 영연방 국가는 전사한 나라에 묘를 쓰는 것이 그 나라의 전통과 장례문화이고, 튀르키예(터키)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안장자 수가 많다. 미국이 전사자 수가 36,492명으로 가장 많은데 안장된 수는 40명으로 적은 이유는 전사자를 본국에 묘지를 두는 정책 때문이다. 주묘역에는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델란드, 튀르키예(터키), 영국, 미국 등 7개국 묘역이 있다. 전사자의 기일에는 관리 직원이 묘에 자국의 국기와 함께 국화를 헌화하여 그 희생에 감사하고 있다.

남의 나라의 전쟁에 참가해 젊은 나이에 죽은 어느 누군들 슬프고 안타깝지 않겠는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사자 중 최연소자는 17세 호주 병사 도은트(J. P. Daunt)이다. 그의 성을 따서 도은트 수로(Daunt Waterway)를 만들었다. 녹지지역과 묘역지역 중앙에 흘러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고도 한다. 전사 후 그의 형 이름으로 참전한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이 수로에는 비단잉어가 살고 있다.

호주의 케네스 휴머스턴 대위는 결혼 3주만에 6·25전쟁 중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의 부인 낸시 휴머스턴 씨는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 대신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자식이 없었지만 평생 홀로 살다가 91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남편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 2010년 4월, 유엔기념공원의 남편 곁에 잠들었다. 이들을 포함하여 부부가 사후에 합장된 사례는 10쌍에 이르는데 자식이 없는 부부가 합장된 경우는 이들 부부가 처음이다. 

캐나다 병사 아치볼트 허시가 참전하자 그의 형인 아치볼트 조지프가 동생이 걱정되어 다니던 철도회사를 그만두고 뒤따라 자원하여 참전하였고, 1951년 10월,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형이 동생의 품에서 먼저 사망하였다. 동생은 평생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형 곁에 묻히고 싶다고 해서 2012년 61년만에 형제는 유해로 상봉해 나란히 누웠다. 유일하게 형제가 합장된 사례다.
“형제로 태어나 전우가 되어 영원히 함께 하다”...묘비명에서
 
미국 리처드 위트컴 장군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유일한 장군이다. 6.25전쟁 당시 미군수사령관으로 근무하였고,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국제시장과 천막, 목조건물이 전소되자 미국 군수물자를 대거 풀어 이재민들에게 나눠줌으로써 군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미 상원 청문회에 소환되었다. “전쟁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승리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명언을 남겨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더 많은 지원 약속을 받아 돌아왔다. 퇴임 후 한국에 남아 부산의 재건과 고아원을 건립하여 전쟁 고아의 아버지로 불렸고, 메리놀병원 등 병원 건립과 부산대학교 건립에도 힘썼던 그는 1982년 89세에 서울에서 영면 후 유언에 따라 이곳에 안장됐다. 2017년 90세에 사망한 한국인 아내 한묘숙 여사도 위트컴 장군과 합장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에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6.25전쟁 중 전사한 유엔군 40,896명의 이름이 국가와 전사자의 알파벳 순으로 새겨져 있다. 추모명비 입구에는 이해인 수녀의 헌시,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가 새겨져 있다. 용산 전쟁기념관 벽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유엔기념공원은 관리 전담 정원사 8명이 80여종의 수목과 15,000여 그루의 나무를 관리하고, 다양한 꽃이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기도 하다. 연중 무휴로 무료 입장이고 산책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이제 이곳은 세계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알리는 성지가 되었다. 

1952년 12월 전쟁이 한창일 때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방한하여 부산 유엔군묘지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전쟁 중이라 황량한 흙밭이었던 유엔군 묘지를 한겨울임에도 푸르게 꾸며야 했다고 한다. 그때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 故 정주영 회장의 묘안으로 잔디 대신 보리싹을 옮겨 심어 정해진 조건대로 공사비의 3배를 받았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턴투워드부산(Turn Toward Busan)’! 
캐나다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 씨의 제안으로 2007년부터 시작되어 해마다 한국 시간으로 11월 11일 오전 11시에 6.25 참전 유엔군 전몰장병을 기리자는 뜻으로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부산을 향하여 1분간 묵념을 하는 행사이다. 이 시간에는 부산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고 이곳에서 유엔군 참전용사와 가족, 주한 외교사절, 유엔군과 정부 요인 등이 참여해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추모 행사를 한다. 참전국 22개국이 동참하고 있고, 2020년부터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로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은 날을 기려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로 법정기념일이다.  이곳을 비롯한 국내뿐 아니라 국외 공관에서도 참전용사를 위한 다양한 보훈의 행사를 한다. 국가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도와준 나라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이제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평화 또한 그러하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향유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우리의 군인, 유엔군으로 참전한 195만여 명의 젊은 용사, 이곳에 잠든 영혼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에 고마움은 이 땅에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참전국의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 할아버지들이 싸운 전쟁을 기억하고 여기에 와서 그들을 추모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나부터 지금 누리는 자유의 의미를 잊고 살았고, 이곳을 묘지로만 생각하고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올해 92세로 6·25전쟁 참전용사인 장인의 얘기를 한번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것도 죄송했다.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상원 사진가 swl5836@naver.com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하기에 더욱 6·25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세계 각국에 생존해 있는 6·25전쟁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이 한국에 오면 한결같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가 이렇게 번영한 것에 놀라곤 한다. 내일을 온전하게 맞는 것이 가장 간절한 소원이었던 그 처절한 전쟁에서 자신들이 흘린 피와 땀이 헛되지 않았다고 기뻐하며, 전쟁의 상처와 폐허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우리 국민에게 오히려 감사한다.

국민소득 67달러의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루었고, K-POP, 드라마, 영화, 한식 등 한류 문화, I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그에 걸맞은 품격으로 그들에게 감사하며 보은할 때이다. 부산에 가면 꼭 시간을 내어 유엔기념공원에도 가봤으면 좋겠다. 잔잔한 감동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할 일이 눈앞에 그려질 것이다. 
“나라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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