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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아네테 멜레세 지음
키오스크/아네테 멜레세 지음

여기 '키오스크'가 있다. 그 안에는 친절하고 뭘 원하는지 금방 알아채는 '올가'가 앉아있다.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무인주문기-키오스크'와는 다른 의미로 식품이나 음료 등을 판매하는 작은 길거리 가판대를 가리킨다. 


 표지에는 작은 창이 뚫려 있어서 마치 키오스크 내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리고 키오스크가 비좁게 느껴질 만큼 덩치가 큰 올가가 앉아있다. 이 작은 공간이 그녀에게 일터이며 집이다. 그리고 올가의 인생 그 자체다.


 올가의 키오스크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거리의 한 가운데에 있다. 손님이 어떤 물건을 찾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로 그녀는 능숙하게 일을 한다.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물어보는 손님에게 길도 알려준다. 온종일 좁은 키오스크에서 올가는 열심히 일을 한다. 늦은 저녁 일이 끝나면 그녀는 늘 기진맥진하다. 가끔 키오스크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면 올가는 여행잡지를 읽으며 석양이 황홀한 먼바다를 꿈꾼다.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올가는 본인이 키오스크를 움직이면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일 키오스크에 갇혀 살던 올가에게는 정말 희소식이다. 그녀는 키오스크를 뒤집어쓴 채 잠시 산책을 가기로 한다. 키오스크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제일 먼저 어디로 향했을까? 마지막 페이지에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황홀한 올가의 미소로 가득 차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그녀가 도착한 곳에서 저녁이면 그토록 원하던 석양을 바라볼 것이다. 

 처음 그곳은 올가의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림책에서 본 그녀는 답답하다거나 불편한 표정이 아니었다. 작은 매점이 아늑해 보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 비좁은 키오스크가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함부로 그녀의 게으름을 탓했다.
 '한 발짝만 나오면 되는데, 왜 저 좁은 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하며.

 하지만 나 역시 올가와 다르지 않다. 집과 사무실이 거의 붙어 있어 그 경계가 모호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숨이 턱하고 막혀도 잠깐 바람을 쐬며 산책을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때로 멋진 휴가를 꿈꾸지만 제대로 나를 위해 가본 적이 없다. 일에 지쳐 집에 들어가도 가족을 위해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는 일을 할 뿐. 심지어 맛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짝만 나오면 되는데...' 어쩌면 누군가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불행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수진 아동문학가
이수진 아동문학가

 주인공 올가는 제 몸에 꽉 낀 키오스크를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는다. 훌훌 벗어던지고 시원하게 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나 다름없는 키오스크와 같이 이동한다. 나는 그것이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또는 원하는 곳을 가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과연 그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곳이 있다면 한번 가보는 거예요. 나무처럼 한번 뿌리내린 곳에 머물러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직 도착지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키오스크를 지고 이동하는 올가처럼 나의 키오스크를 매고 씩씩하게 오늘도 걷고 있다. 막연히 상상하던 일들을 하나씩 겪고 만나고 부대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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