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임조 동화작가
정임조 동화작가

대학생인 딸이 여름방학을 시작할 무렵 새로운 알바에 도전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졸업 전까지 웬만해선 알바를 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던 터라 듣지도 않고 반대부터 했다.

작년 여름 딸은 치킨집에서 첫 알바를 시작했다. 하루 12시간 내리 불 앞에서 닭을 튀기다가 열흘째 되는 날 쓰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 겨울에는 또 레스토랑에서 1킬로가 넘는 접시를 양손에 들고 나르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그 뒤에도 자잘한 알바를 시도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몸을 다치기도 하고 마음을 다치기도 하면서 알바를 접었다. 그 뒤 부터는 더이상 알바를 못하게 했다. 하지만 딸은 구청에서 모집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에 몰래 응시 서류를 냈다.

딸의 고집에 꺾인 나는 구청에서 모집하는 거라면 적어도 몸 상하는 일은 없겠지 싶어 마음을 바꿨다. 몸을 많이 쓰는 일이 아니라 구청 행정 업무를 보조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체험해 보는 것도 값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대가 됐다.

컴퓨터 추첨 결과 딸은 정원 안에 들지 못한 예비 8번이 되었다. 적이 실망한 딸이 기어이 다른 알바라도 하겠다고 떼를 쓰고 있을 무렵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당첨된 학생 중에 포기자가 있어서 딸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다. 딸은 마치 입사 시험에 합격한 것처럼 좋아했다.

7월 첫 날 아침, 전공 학과를 배려해 준 덕분에 보건소로 출근하게 되었다. 고된 일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은 되었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까지, 긴 시간을 이제 막 스물을 넘긴 딸이 어떻게 버틸까 걱정이 됐다.

딸은 하루 종일 코로나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역학조사를 하는 업무를 맡았다. 첫 날 근무를 마치고 온 딸에게 일이 어렵더냐, 할 만하더냐 눈치껏 물었다. 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대뜸 전화를 걸어 이것 저것 캐물으며 조사를 한다는 것이 어디 호락호락한 일이었겠는가. 더욱이 코로나에 걸려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도 그런 전화가 유쾌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딸은 생판 모르는 이들에게 수화기 너머로 이리저리 치이느라 녹초가 돼 돌아왔다. 애초 보내지 말걸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사흘째 접어들자 조금씩 달라졌다. 퇴근해 오자 마자 털썩 식탁에 앉아 한숨 쉬는 횟수가 줄더니 조잘조잘 참새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4번 감염됐다는 사람, 잠자는 사람을 왜 깨우냐고 호통치는 사람, 귀가 멀아 말귀는 못알아듣는 어르신, 자가격리를 하지 않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들과 하루 100통 넘게 통화하면서 많은 걸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은 말끝에 그동안 쓰라렸던 알바의 추억을 꺼내놓았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여긴 지난 시간들이 지금을 견디는 힘이 돼 준 것 같다고, 그 일에 비하면 이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앞으로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할 때 딸이 딴 사람처럼 보였다.

아침마다, 대범하고 감정에 끌려가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조언을 하면서 딸의 출근을 지켜보았다. 1주일이 지날 즈음 딸은 전화 역학조사에 노련해졌다. 점심 시간에 사람들과 어울려 냉면을 먹으러 나가기도 하고 간식으로 받는 도넛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표정도 밝고 목소리 톤이 높았다.

근무 마지막 날, 자가격리를 하면 생계에 지장이 있다며 울먹이는 아저씨와 통화를 할 때 눈물이 나는 것을 꾹 참았다고 말했다. 한 달이었지만 딸은 부쩍 자라 있었다. 상처없이 배려와 사회를 향한 따스한 시선을 배워온 딸이 참 예뻤다.

8월, 딸은 다시 여름의 낭만을 운운하며 여행에, 필라테스 요가에, 영어공부에 들뜬 꽃같은 여대생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의 분주하고 긴장된 날들은 평화를 되찾았다. 이제는 8월을 뜨겁게 채우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는 딸을 보면서 내 21살 적을 생각해 보곤 한다. 나는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무엇을 꿈꾸지도 못했다. 변화와 도전이 무서워서 늘 몸을 사렸고, 넘어질까 종종걸음쳤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책이 어느 유명한 시인의 번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그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 말을 깊이 알지 못했고 그 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살면서 가슴을 치며 후회할 일이 있거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무랄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난다. 하지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아버린다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 없어질까? 그때 좀 모르면 또 어때, 결국 다 알게 되는 걸, 늦은 만큼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걸….

7월 한 달이 딸에게는 인생이라는 한그루 나무에 열린 무성한 이파리 하나 같은 시간이겠지만 훗날 요긴한 열매를 위해 노력할 때 멀리서 비치는 가느다란 별빛 같은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겁쟁이 엄마를 닮지 않은 딸에게 8월의 햇살 같은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