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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순 수필가
배정순 수필가

아이 갖기를 기피는 세상이다. 아들이 늦은 나이에 결혼했는데도 출산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우리 세대는 결혼하면 출산은 당연한 걸로 여겼었다. 요즘 세대는 경제적인 이유로 <비혼주의>니, 결혼해도 출산하지 않고 맞벌이로 사는 <딩크족>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해 섣불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결혼 한 것만도 감지덕지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며느리가 결혼하자마자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다고 했다. 놀랍고도 고마웠다. 결혼한 것만도 과분한데 손주까지, 이건 겹경사가 아닌가.  

출산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사가 이어졌다. 출산 휴가에서 복직하자마자 아기를 또 가졌다는 것이다. 고희가 되도록 눈앞에 고물거리는 손자 하나 없는 게 못내 아쉬웠는데 혼인 3년 만에 손자를 둘이라. 이건 가문에 보통 홍복이 아니었다. 기다림 끝에 찾아온 귀한 손님, 손주 생각만 하면 가만 있다가도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좋은 일에는 시샘하듯 안 좋은 일들이 손잡고 온다더니 우리에게도 그 불문율은 비껴가지 않았다. 둘째 소식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며느리가 퇴직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직업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은데 무슨 가당찮은 소린가. 이 어려운 세상을 외벌이로 어찌 살려고. 맞벌이를 당연하게 여겼던 터라 며느리가 일선에서 물러난다니 암담했다. 이유가 아기를 가졌기 때문이라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매스컴에서 출산 절벽이니 인구 절벽이니 무시무시한 용어를 쏟아내며 그 문제 해소 차원에서 임산부에게 여러 혜택을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둘째 가졌다는 이유로 20여 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서 퇴출이라는데 살아날 법하나 마련하지 않았다니. 정부는 실효성 없는 번죽만 울린 것이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손 털고 나와야 하는가. 

배가 불러오도록 차마 아기 가진 사실을 말 못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입덧은 어찌어찌 넘겼지만, 날이 갈수록 불러오는 배는 숨길 수가 없어 상사에 이실직고한 모양이다. 임신 얘기를 듣자 상사는 난색을 보였다. 하긴, 어려운 시기에 공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체에서 출산 휴가 끝나자마자 아이를 또 가졌다고 하면 나라도 달가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면박대하고 버티면 그만이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인정상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 터. 이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당장 며느리가 당한 일이다 보니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꿈틀거렸다. 사측으로서야 세상에 구직자가 널려있는데 뭐가 답답해 고연봉자를 잡아둘까. 

평생을 전업주부 틀을 못 벗어났던 나다. 그래서인지 마음 안에 번듯한 직업을 갖고 어느 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다. 늙어서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바쁘게 사는 그네들을 보면 부럽고 멋져 보였다. 가정 경제도 그렇지만 밖에서 소신껏 자기 능력을 펼치며 당당하게 사는 여성상은 내가 이루고 싶어도 못 이룬 꿈이었다. 은연중에 며느리가 그리 살아주길 바랐다. 한데 며느리마저도….

아이들은 덤덤히 받아들이는 쪽이었다. 아니, 아들의 반응으로 보아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은 것 같다. "엄마, 그들도 땅 파서 장사하는 것 아니고 불황에 인원 감축 원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복귀하자마자 또 휴가를 내겠다고 하면 어느 사주가 달가워하겠어요. 그들은 자선 사업가가 아니고 이윤 창출을 업으로 하는 장사꾼이에요" 한다. 퍼뜩 내가 간섭할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널브러져 있던 마음을 수습했다.

아이들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구세대인 내가 물질, 명예, 보여주기 위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아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긍정형이다. 장모도 몸이 아파 아이 둘은 봐줄 수 없다고 선언한 상태다. 늙고 병약해 아이보기 힘들어하시는 장모에게 아이 둘을 맡길 수도 없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더라도 유아기를 엄마 손으로 양육해 정서적인 안정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맞벌이로 경제적인 안정은 확보할 수 있지만, 부를 거머쥔들 가정의 안정이 깨진다면 그것도 상책은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손주들이 엄마 품에 안겼다. 아이들 사는 모습이 너무 편안해 보인다.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간다. 아기 불어나기 전에 유럽 여행을 계획했는데 둘째가 들어섰다고 너스레다. 오지도 않을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혀 산 나와 현재를 즐기며 사는 아이들의 삶, 그게 나와 아이들 간의 견해차가 아닐까. 

나는 내 세대에 맞게, 아이들은 아이들 시대에 맞게 삶을 꾸려가고 있다. 사실 나는 평생 집순이로 살아 직업을 가진 여성이 부러운 것이지 직장생활을 오래 한 며느리 입장에선 나와 생각이 같을 수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 시대에 맞게 살겠다는데 제삼자인 시어미가 무슨 자격으로 감 놔라 배 놔라! 우물 앞에서 숭늉 찾는가.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먼 훗날 생각하느라 실속 없이 살았다. 훗날로 미루어 두었던 계획들은 그것으로 끝이지 실천한 게 별로 없다. 그때는 그때대로 이유가 있었다. 

즐기는 것도 때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지금의 삶을 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이들이 사는 모습에서 배운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살다 보니 평생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 살았기에 이 정도라도 살고 있다고, 대리만족의 꿈을 여윈 허한 마음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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