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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일태 수필가
임일태 수필가

"제가 남창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인천공항 여행객 미팅에서 미모의 여자 인솔자에게 내가 불쑥 뱉은 말이다. 주변의 초면인 동행자들은 박장대소다. '초저녁부터 젊은 여자가 남창을 찾다니!'라며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주변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나도 남창이 고향입니다. 부모님은 아직 그곳에 살고 계십니다. 참 좋은 곳이죠"라고 반갑단다. 그녀는 전국에서 모인 서른 명의 해외여행객의 인솔자다. 인솔자만이 가진 동행자 명부를 보다가 "남창에 사시는 분이 누구시죠?"라고 묻는 말에 내가 불쑥 내뱉은 말이다.

조선 후기에 금위영과 어영청에 딸린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남쪽의 남창(南倉)과 서쪽의 양산시 서창(西倉)은 지명이다. 남창의 정확한 행정구역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를 말하지만, 그 창고에 영향을 받는 주변을 지칭한다. 온양읍 전체와 서생면과 온산읍 일부까지 넓은 지역을 남창이라 통칭하고 있다. 동음인 남쪽으로 난 창문의 南窓과 남색을 파는 남자라는 뜻의 男娼과 혼동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내가 남창에 이사 온 지도 십여 년이 넘는다. 살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좋아할 것만 같아서 지인들을 만나면 늘 권한다. "남창으로 놀러 오세요"라고. 

남창의 대운산에서 물길 따라 진하 해수욕장까지 걸으면 인간의 삶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다. 대운산 계곡의 옹달샘에서 발원한 개울물이 남창천을 만들어 남창 뜰과 삼평 뜰을 지나면 회야강의 본류와 만난다. 회야강은 어촌인 강양항을 거쳐 진하 해수욕장으로 가서 태평양에 합류한다. 남창의 대운산에서 생성된 물길은 산촌, 농촌, 도시, 어촌을 지나간다. 이곳 남창처럼 한 곳에서 산과 강과 바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드물지만, 이곳은 한눈에 모두를 볼 수 있다. 개울물이 유아기와 소년기, 냇물은 청소년기 강물을 청년기와 장년기, 바다는 노년기, 태어나서 사라지는 물을 보면서 인생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망망대해로 가는 그것까지는 볼 수가 있다. 다만 옹달샘의 이전과 망망대해 이후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대운산 정상에서 진하 앞바다를 보거나 진하의 명선교에 서서 대운산 정상을 바라볼 수는 있다.

남창천과 회야강을 따라 걸으면 물새들이 노는 것을 자주 본다. 물새 우는 강언덕이란 노래가 연상되는 곳이다. 젊은 시절 그대와 둘이서 막연한 미래의 행복을 연상하며 걷던 추억이 생생하다. 물을 따라 길은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물새 떼의 군무와 울음소리는 강과 언덕과 하늘과 평야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하다. 이 좋은 곳을 혼자 보기가 그저 아까울 뿐이다.

강 건너 반대편의 강둑에 더 많은 꽃이 피어있는 것 같다. 물새도 반대편 강기슭에 많이 모여 있는 것 같다. 건너가서 보고 싶지만 건너갈 방법이 없다.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다리는 아주 먼 곳에 있다. 그냥 바라만 볼 뿐, 강 건너 불구경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물 따라 걷는 것이 낭만과 서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이치도 깨닫게 해준다. 서울 강남 집값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다는 사실과 한국 전통의 풍수지리학에서 배산임수 남향집이 제일 좋은 집터라는 것은 서로 모순이다. 배산임수 남향집은 강 북쪽에만 가능하다. 서울 강남은 배산임수 남향집이 있을 수가 없다. 강 남쪽에 집을 지어 물을 바라보면 북향이 되는데도 강남의 집값이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배산임수의 지형을 찾아 한강의 북쪽이 먼저 개발됐을 것이다. 먼저 개발되는 지역보다 나중에 개발되는 지역이 발전하는 것이다. 또 한국전쟁 때 한강 철교가 폭파돼 피난 행렬이 아수라장이 된 것과 강남의 집값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리만 동동거리며 하는 강 건너 불구경과 한강 철교 폭파 후의 피난민의 아수라장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 것만 같다.     

사철 변함없는 듬직한 바다도 좋고, 철 따라 달라지는 산과 들도 좋고, 삼일과 오 일에 서는 남창장에는 국밥집이 유명하고, 주변에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도 볼만한 곳이다. 남창장 옆에 있는 남창역은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로 부산 부전역에서 울산 태화강역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시로 다닌다. 남창 주변의 경관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메마른 가슴에 서정을 꽃피울 것이다. 가끔씩은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돼 인생을 음미하는 것도 좋지않을까 싶다. 남창으로 한번 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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