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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채

새순이 자라 숲이 되는
글자 배우러 그녀가 온다
 
골짜기 떠나 야간 학교 가는 길
화전火田 일구시던 아버지 거친 손길처럼
 
글자의 숲을 붉게 태운 숯으로 남아
백지에 검게 글자를 메운다
 
어두웠던 시간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눌러선 상처가 꽃으로 박힌다
 
구운 화분에 숯을 세우고 풍난을 심는다
검게 피운 꽃 그녀가 있다 
 
△한영채 시인: 2006년 문학예술 등단. 시집'모량시편' '신화마을' '골목안 문장들' '모나크 나비처럼'
 
숯, 비 바람 견디어 더 단단하게 태어나는 또 다른 생명이다. 다시 소생을 꿈꾸는 아픈 불꽃이다

한영채 시인은 제목에서부터 그들의 힘들었던 어제를 숙성시키듯 잔잔한 은유로 담아내고 있다. 평생을 문맹으로 산 어른들에겐 지금이 분명 숯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리라. '화전火田 일구시던 아버지 거친 손길처럼'으로 시인은 힘들었던 그들을 읽어 내고 '글자의 숲을 붉게 태운 숯으로 남아/백지에 검게 글자를 메운다'로 오늘을 쓰며 '어두웠던 시간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눌러선 상처가 꽃으로 박힌다'고 승화시키고 있다. 하여 독자들의 오늘을 차분히 돌아보게 한다. 글자를 아는 건 당연한 것이라 별 생각없이 살아왔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오는 우리를 일깨우는 듯,

몇 년 전에 초등학교 교육과정 6년을 3년으로 압축한 문해 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입학하는 날 국기에 대한 경례를 고개숙여 다소곳이 절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죽인다고 편지를 써서 보내도 우리는 모르는 기라요. 당달 봉사인기라요"라고 하소연을 하던 어르신들이다. 그들은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도 돌아가기 싫다고 하셨다. '글자를 알아 세상을 알아가는 오늘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라면서. 시를 써서 시화전을 열던 날 평생을 그리던 하얀칼라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된 기분이라며 둥실둥실 춤을 추셨다. 
 

서금자 시인
서금자 시인

그때 가르친 학생 중에 한 명은 현재 학성고등학교에서 토, 일요일에 실시하는 방송통신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내년에는 대학교에 갈 꿈에 부풀어 있다. 기어이 사각모를 쓰겠다며 당차게 다짐하는 그녀의 주름진 눈웃음이 참 예쁘다.

글자를 아는 일, 시를 읽고 쓰는 일, 당연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주어진 일이 아니었는데, 오늘, 그 수많은 고마움에 감사하며 쉼호흡 크게 해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원주 박사의 마지막 말씀을 경어체로 전해 본다. 

'힘내세요, 가을입니다, 사랑합니다'

서금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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